‘외환 컨트롤타워’ 격인 외환건전성협의회가 열린 것은 외환 수급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시사한다.
지난해 7월 신설된 외건협은 당초 매 분기 1회 개최가 원칙이지만 지난해 두 차례 모인 뒤 올해는 회의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이달 초 전격적으로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특히 외건협이 2020년 3월 대규모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입 요구) 사태 당시 외환시장이 급격히 불안해진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회의 소집 자체가 최근 외환시장에 대한 당국의 판단이 예사롭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외환 당국은 올해 외환 순유출 규모가 200억 달러대 후반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 규모(294억 9000만 달러)와 맞먹는다. 역대 최대 외환 순유출이 2000년 중반 무렵의 200억 달러 초반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최근에 빚어지고 있는
달러 유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것은 외환 수급의 두 축인 무역과 자본거래를 통한 외환 수급이 모두 좋지 않은 탓이다.
먼저 무역이 불안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무역 적자는 103억 5600만 달러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더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다소 안정세로 들어서면 무역수지 역시 개선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지난달 수출 증가율이 5.4%를 기록하며 16개월 만에 한 자릿수로 내려오는 등 수출 둔화 조짐이 뚜렷하다.
여기에 외국인의 ‘셀코리아’도 거세다. 외국인투자가는 올 들어 6개월째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규모는 19조 9040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00억 원가량 많다.
특히 외국인은 지난달 상장채권을 9340억 원 순회수했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한 것은 2020년 12월 이후 18개월 만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민연금 등 기관과 개인의 해외투자가 늘며 외환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마저 잇따라 빠져나가자 외환 수급 상황이 빠르게 악화한 것이다.
문제는 환율이다. 국민연금과 개인투자자는 해외 주식에 투자할 때 환 헤지를 하지 않는다. 해외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현물시장에서 조달한다는 의미로 이는 환율을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장재철 KB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서학개미와 기관의 해외투자 증가로 환율 방향성에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26.8%인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을 2023년 말까지 30.3%로 확대할 방침이다. 외환 초과 수요가 앞으로 구조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유사시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대외 자산이 국내로 환류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기관과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며 “수익률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에 예전처럼 환 헤지를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7년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 환 헤지 비율을 100%에서 2008년 70%, 2009년 60%로 점차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자 환 헤지 비율을 2008년 90%, 2009년 70%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연금 운용 원칙에는 국가 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해 운용해야 한다는 공공성의 원칙이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대책 마련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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