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만 되면 차례상 음식 준비로 스트레스를 겪는 여성이나 가족 간 불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국민 고충을 풀어드리기 위해 다음 달 중순 차례 간소화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에는 기제사(忌祭祀)까지 간소화할 생각입니다.”
최영갑(59·사진) 신임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 회장은 19일 취임식에 앞서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의례 간소화 등 유교 현대화 작업에 가장 중점을 둘 예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 회장은 지난달 21일 전국 유림을 대표하는 유도회(儒道會)의 25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유도회는 전국 17개 본부와 290여 개 지부로 구성돼 있고 도덕성 회복 운동이 주요 활동이다.
그는 “유교는 많은 국민들에게 ‘꼰대’ ‘고리타분한 이념’으로 인식돼 있고 연로한 남성 중심의 경직된 단체인 탓에 현대인에게 환영받지 못한 지도 오래됐다”며 “의례 간소화부터 시작해 점차 대중과 친밀한 유교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 회장은 “유림조차 잘 알지 못하는 의식들이 마치 유교의 정통인 것처럼 행해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에도 관직 3품관 이상만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내고 일반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를 지냈는데 198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자 자신들의 가문을 내세우기 위해 너도나도 4대까지 제사를 지내는 풍토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에는 정승 집안이라도 제사상에는 밥과 국·술·과일·포 등 10개 안팎의 음식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흔히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의 차례와 제례상 차림법은 유교 예법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최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대중과 친밀한 유교를 만들기 위해 남녀 차별을 타파하고 유교 경전을 한글화하는 작업도 검토 중이다. 유교의 성차별적인 규범도 원래 유교 경전에는 없었지만 이후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자의적으로 도입됐다는 것이 최 회장의 설명이다. 가령 맹자의 가르침에는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는 ‘오륜(五倫)’만 있었는데 한나라 때 동중서가 수직적 관계를 내세운 ‘삼강(三綱)’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사실 상차림 간소화 같은 것은 일반 국민들이 이미 하는데 유교가 뒤늦게 따라가는 것”이라며 “유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고 하루빨리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