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로 휴가비가 폭등하면서 여름휴가를 앞둔 시민들의 고심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Vacation)과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진 베케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해 회자될 정도다. 교통비는 물론 숙박비와 관광비 등까지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최근 알뜰 여행 상품에 수요가 몰리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19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물가 상승으로 휴가비가 당초 예상보다 20~30%가량 오른 데 따라 휴가를 앞둔 여행객들이 묘책 찾기에 나섰다. 이들 발길이 몰리는 곳 가운데 하나는 실속형 상품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7만 원으로 일주일 동안 열차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여행상품인 ‘내일로’를 이용한 관광객은 올 들어 6월까지 15만 1300여 명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총 이용객 수인 18만 명에 근접한 수치다. 직장인 박 모 (24) 씨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내일로’ 티켓을 미리 구매했다”며 “다만 제한된 내일로 전용좌석에 티켓 구매자들이 과도하게 몰리며 예약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 모(27) 씨도 “지금까지 부산 여행을 갈 때마다 KTX 비용이 10만 원 넘게 드는 점이 부담이었는데 내일로를 이용하니 비용을 5만 원 이상 절약했다”며 “이렇게라도 교통비를 줄일 수 없다면 숙소비·밥값 등 경비가 너무 많이 필요해 국내 여행도 더는 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에 오히려 동남아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외로 눈을 돌리는 여행객도 늘고 있다. 동남아 지역의 항공 공급 확대와 항공료 인하가 맞물리면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게 여행 업계 관계자의 해석이다.
문제는 휴가비 상승에 따라 여름휴가에서도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국제항공료 소비자물가지수는 133.41로 1년 만에 22%나 올랐다. 국내 단체여행비도 127.1을 기록해 지난해보다 31%가량 급등했다. 콘도 이용료, 호텔 숙박료도 지난해 동기 대비 6%가량 상승했다. 휴양시설 이용료, 모텔 숙박료 등 여비와 관련된 대부분의 지수가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는 데 따라 휴가를 아예 포기하는 이른바 ‘휴포자’마저 속출할 정도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유 모(28) 씨는 “이달 말에 친구와 함께 2박 3일로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깜짝 놀랐다”며 “숙소와 차량만 예약했는데도 100만 원이 들어 아예 휴가를 포기하고 집에서 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고소득층을 중심으로는 유럽 등 고가 상품에 수요가 집중되는 실정이다. 치솟는 물가가 휴가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여름휴가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행 물가가 오르는 상황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게 차등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물가가 더 상승하더라도 고소득층의 여행 수요는 꾸준히 있을 수밖에 없지만 소득이 낮은 계층은 평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혹은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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