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력 수요가 많은 ‘피크타임’에 산업체의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한 ‘수요 반응(DR·Demand Response) 시장’ 활성화에 나선다. DR 시장은 전력 수요가 높거나 전력 예비력이 부족할 때 기업들이 전력 사용량을 줄이면 전력거래소가 이들 기업의 전력 감축분만큼 보상금을 지급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정부는 각종 비용과 수용성 문제 등으로 발전소 추가 건설이 쉽지 않은 만큼 DR 시장에 기반한 전력 수요 조절을 통해 ‘블랙아웃(대정전)’ 발생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말 공개 예정인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DR 시장 확대 방안을 포함시킬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 피크 시간대에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해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기보다는 DR 시장 활성화를 통한 전력 수요를 관리하는 방안이 훨씬 경제적”이라며 “관련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력거래소의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르면 DR 시장 도입으로 전력 단가의 기준이 되는 ‘계통한계가격(SMP)’ 인하 효과 등이 발생해 지난해만 1727억 원의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시장도 꾸준히 확대돼 전력거래소가 전력 감축분만큼 기업에 지급하는 정산금 규모도 2015년 1047억 원에서 지난해 2541억 원으로 6년 새 2.5배 늘었다.
정부는 DR 시장 참여 기업을 늘리기 위해 DR 시장 운영 프로그램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DR 시장은 전력거래소 요청 시 전력 사용량을 의무 감축해야 하는 ‘신뢰성 DR’과 각 기업들이 전력거래소 입찰 형태로 전력 사용량을 조절하는 ‘자발적 DR’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신뢰성 DR은 일반적으로 예비 전력이 5.5GW 미만으로 떨어지면 발동돼 전력 피크타임에 전력 수요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자발적 DR은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발령되거나 전력 수요가 거래소 예측 대비 높을 때 주로 운영돼 전력 생산에 따른 비용 부담을 낮춘다. 지난해 기준 5034개 업체가 DR 시장에 참여 중이며 전력 수요 감축량은 지난해 482GWh로 대형 원전(설비 용량 1GW 기준)을 482시간 연속 가동한 규모에 달한다.
정부는 DR 시장을 키우기 위해 안정적 전력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주파수 유지용’ DR 시장 참여 기준을 확대할 방침이다.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 변동 폭이 큰 신재생발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보상금 등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기업의 전력 수요를 조정하는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활용한 다양한 DR 프로그램을 마련해 전력 수요를 분산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이 같은 수요 조절 중심의 전력 수급 대책은 탄소 중립과 같은 글로벌 에너지 추세 변화와 관련이 깊다. 정부는 현재 원자력발전을 중심으로 에너지 수급 계획을 전면 수정 중이지만 발전소 공급을 무한정 늘리기는 불가능하다. 각종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로 석탄발전소 등 주요 화력발전소의 퇴출이 수십 년 내에 이뤄져야 하는 데다 주민 수용성 문제로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한 원전 추가 건설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2030년까지 최대 전력 수요가 연평균 2%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전력 수요 증가분이 공급 증가분을 웃도는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1년에 며칠 되지도 않는 전력 피크 시간대에 대비해 발전소를 무한정 늘리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점에서 전력 수요 분산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2020년 기준 국내 전력 사용량의 경우 산업용이 77%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 부문의 수요 조정이 향후 안정적 전력 수급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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