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삼성으로부터 분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CJ그룹이 미국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한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캐천버그 월트디즈니 회장 등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스튜디오 드림웍스에 무려 3억 달러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당시 CJ그룹의 매출은 1조 원 안팎이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한 투자의 배경에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있었다. 그의 문화 사업 첫걸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어 20여 년간 CJ는 300여 편의 한국 영화에 2조 원가량을 투자했다. 1998년에는 CGV강변을 시작으로 국내에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2월 CJ ENM이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4관왕을 수상하며 K콘텐츠를 세계 문화의 중심에 세웠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글로벌 시장 사이에 접점을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본인이 그리는 문화 사업에서의 역할을 밝히기도 했다.
본인이 한 말처럼 이 부회장이 한류 확산과 문화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제 에미상 공로상을 수상한다.
19일(현지 시간) 국제 에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국제TV예술과학아카데미(IATAS)는 보도 자료를 통해 이 부회장이 한국 대중문화의 산업화와 글로벌화에 큰 역할을 해 공로상을 수상하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브루스 파이스너 IATAS 회장은 “이 부회장은 25년 이상 한류를 이끌어온 선봉장으로 탁월한 비즈니스 통찰력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리더”라며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통해 전 세계는 한국 문화와 미디어 산업에 대한 이 부회장의 헌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CJ가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올해 칸 영화제 수상작 ‘헤어질 결심’ ‘브로커’의 총괄 프로듀서를 담당했고 2020년부터는 아카데미영화박물관 이사회 부의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에서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을 이끄는 리더 500인’ ‘올해의 국제 미디어 우먼’으로 선정되는 등 영향력도 인정받고 있다.
CJ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영화계 관계자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 부회장의 강점은 작품의 다양성과 창작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 영화가 글로벌 무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 데는 수익에 신경 쓰지 않고 작품성에 집중하도록 지지를 아끼지 않은 이 부회장이 공이 컸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봉 감독이 당신 자신이 돼줘서 감사하다”며 창작자의 자율을 존중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CJ의 콘텐츠 투자는 계속된다. 2021년 CJ ENM은 2025년까지 콘텐츠에 5조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5월에는 CJ그룹 차원에서 컬처 분야에 2026년까지 1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2020년 인터뷰에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전례 없고 다양한 콘텐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국제 에미상 공로상은 방송 산업 부문에서 뛰어난 기여를 한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된다. 올해 시상식은 11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미국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전 세계 영화 발전에 기여한 프로듀서에게 수여하는 ‘필러 어워드’도 수상한다. 10월 15일(현지 시간) 개최될 ‘아카데미 박물관 갈라’에서 수상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줄리아 로버츠, 틸다 스윈턴 등과 함께 수상 명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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