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하지 말 걸 그랬어요. 다시 들어가야 할까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물가·긴축·불황에 대한 금융시장의 공포가 어느샌가 주춤합니다. 6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증시에 ‘다시는 주식 안 한다’고 탈출을 도모하던 투자자들 역시 이달 들어 다시 하나둘 증시로 돌아오고 있죠. 특히 올 2분기에만 22.4% 추락하며 글로벌 증시 하락을 주도한 나스닥이 7월 들어서는 7% 이상 상승하며 바닥을 찍은 것 아니냐는 ‘반등론’이 솔솔 나옵니다. 우리 증시 역시 2200선까지 내주며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뜨렸던 6월과 달리 최근 2400선을 탈환하며 기대감을 키우는 모습이네요.
물론 한 편에서는 물가·긴축·불황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증시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투자 재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우리 투자자들은 어느 쪽을 따라 움직여야 할까요. 이번 주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다시 불붙은 미국·한국 증시의 바닥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美 “약세장 꽤 빨리 끝날 것” VS “그저 베어마켓 랠리”
우선 분명한 것은 최근 우리 증시를 포함해 미국 등 글로벌 증시 전반에서 나타난 반등장이 ‘추세적 상승’이라고 본 전문가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대부분 전문가들이 일종의 ‘베어마켓(약세장) 랠리’로 해석하고 있죠. 약세장이라고 해도 주가가 매일 떨어지는 건 아니고 때때로 반등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단기적으로 증시가 오르는 반등장을 ‘베어마켓 랠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베어마켓 랠리’ 이후를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엇갈립니다. 특히 미국 증시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조금씩 짙어지는 모습이죠. 예컨대 미국계 투자회사 스티펠의 배리 베니스터는 18일(현지시간)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는 과도했고, 6~9개월 내 미국의 침체를 예상하지 않는다”며 3분기 증시가 추가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특히 소프트웨어나 반도체 같은 경기 민감형 성장 기업들의 실적(주당순이익·EPS)이 주도하는 랠리가 3분기 펼쳐질 것으로 관측하기도 했습니다. 또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게 되면 주가 랠리를 떠받칠 것이라는 강한 긍정론을 펼쳤죠.
월가의 대표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 역시 미국 증시의 약세장이 꽤 빨리 끝날 것이라는 일종의 낙관론을 내놓았습니다. 증시 비관론자로 유명한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의견이라 조금 더 주목을 받았는데요. 그는 지금이 약세장인 것은 맞지만 “경기 침체와 V자형 회복, 연준의 타이밍과 고용 정점 등의 요소들이 이전 사이클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고통스럽겠지만 약세장의 결론이 매우 빠르게 올 것이라는 뜻이기에 좋은 소식”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미국의 대형증권사인 인터랙티브 브로커스를 창립한 토머스 피터피 역시 20일 “증시 바닥까지 아주 먼 길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올해 후반께 주가가 바닥을 치고 이후로는 비교적 순항할 것”이라는 비슷한 의견을 냈습니다.
반면 제프리스는 미국 증시가 약세장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제프리스의 앤드류 그린바움은 “S&P500 기준으로 낙폭이 25% 미만인 약세장의 경우 다음 고점이 나오기까지 평균 568일 걸렸는데 현재는 131일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지금 시장이 악재를 소화하는 법을 익혀 마치 악재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투자 위축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UBS 역시 여전히 신중론을 제시합니다. UBS의 글로벌 자산관리 최고투자책임자인 마크 해펠레가 이끄는 전략가팀은 “투자자들이 경제 전망과 중앙은행 정책 및 정치적 위험에 대해 더 명확한 견해를 가질 때까지는 시장 심리가 계속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가 볼 때 모든 영역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약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성장주보다는 가치주·방어주·배당주·우량주 등에 집중하는 전략이 당분간 더 유효하다고도 조언했습니다. 솔루스대체자산운용의 댄 그린하우스 수석 전략가 역시 최근의 반등세는 “우리가 약세장(베어마켓)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며 “단순한 베어마켓 랠리 이상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네요.
韓 “내수 기반 약한 신흥국…한미 금리 역전도 위험해”
증시 바닥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미국 증시와 달리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 더 한쪽으로 명쾌하게 기웁니다. 반등에 대한 기대보다는 아직은 주의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이죠.
미국은 반등해도 한국은 힘들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로는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고 내수 기반이 약하다는 점을 꼽습니다. 경기 민감 수출주 위주의 기업들이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코스피 시장의 특성상 경기 침체의 신호가 강해지고 있는 것은 곧 기업 이익의 악화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실제 코스피 기업들의 올해 이익 추정치는 최근 꾸준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지수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한국의 12개월 선행 EPS는 직전 고점 대비 약 5.7% 하락한 상태라고도 하죠.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가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상당히 선반영하고 있는 만큼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대한 태도가 조금만 누그러져도 투자 심리는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연준의 톤은 변화될 수 있지만 9월부터 양적 축소는 950억 달러로 확대되고 금리 인상 또한 지속될 예정이기에 내수 기반이 약한 신흥국은 충격이 여전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은 무역수지 적자 확대 지속에 따라 원·달러 환율 약세가 예상되고 기준금리 인상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소비 둔화 우려가 상존한다”며 “한국 기업이익 전망은 지금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감안하면 지수는 좁은 박스권내 횡보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장단기 금리차 역전 폭이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 수준만큼 심화된 상황임을 고려하면 금융 여건이 아직 타이트한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여전히 성장주 유형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합당하며 기업 마진율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을 권했습니다.
이 밖에도 미 연준이 7월 0.7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될 경우 외국인 금융자산 이탈이 재차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국내 증시의 반등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로 꼽혔습니다.
7월 FOMC, 애플·아마존 실적발표…美증시 방향 바뀔까
이처럼 ‘바닥 탈출’은 미국 증시가 먼저 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은 가운데 다음 주인 7월 말은 특히 대형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특히 높습니다. 뱅크오브뉴욕멜론 자산운용의 리오 그로호스키 최고투자책임자(CIO) 역시 “기준금리를 결정할 연준의 7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열리고 미국 GDP를 비롯한 경제 지표 발표와 S&P500 상장 기업 175곳 남짓이 실적을 발표한다”며 “이번 주가 여름 중 가장 중요한 한 주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우선 FOMC를 통해 연준이 긴축 강도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린다는 신호가 나온다면 고강도 긴축이 선반영된 미국 증시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리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FOMC 결과는 한국 시간으로 28일 새벽 발표되는데 현재 금융시장의 컨센서스는 ‘자이언트 스텝’, 즉 0.75% 기준금리 인상입니다. 한 때 ‘울트라스텝(1% 기준금리 인상)’ 공포까지 시장을 떠돌았던 점을 감안하면 자이언트 스텝은 큰 악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죠.
이날 저녁에는 미국의 2분기 GDP도 발표됩니다. 일각에서는 1분기에 이어 2분기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데요.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기술적으로 경기 침체에 빠지게 되는 셈이지만, 금융시장이 이미 얕은 침체를 상정하고 조정을 받은만큼 시장이 이를 새로운 악재로 받아들일 여지는 적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음주 이뤄질 애플·알파벳·아마존·메타 등 주요 빅테크들의 실적 발표는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현지시간으로 △26일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퀄컴 △27일 메타 △28일 애플·아마존 등이 실적 발표를 대기 중입니다. 지금 미국 증시의 반등이 넷플릭스와 테슬라의 호실적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실적이 추가 랠리를 이끌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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