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에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A사를 창업한 B사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올해 들어 투자유치가 힘들어졌다”며 “지난달부터 벤처캐피탈(VC)들과 수차례 미팅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제는 가능성만 보고 베팅하는 게 아니라 당장의 실적을 요구하고 있어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부르는 대로 몸값을 인정 받을 만큼 벤처캐피탈(VC)를 골라서 투자 유치하던 스타트업들이 투자 절벽에 직면했다.
급격한 경기 침체에 호황을 누렸던 스타트업 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국내 스타트업의 반기 투자 금액이 처음으로 하락세를 기록했다.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도 차별화가 시작됐다는 진단이다.
25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올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 동향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VC들이 2022년 상반기에 투자한 전체 금액은 7조873억5000만 원(977건)으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2100억원 가량 줄었다. 2021년 상반기 전체 투자 금액은 4조 4279억5000만 원이었다. 2021년 하반기 전체 투자금액은 7조3007억5000만 원으로 증가세를 이어가며 역대 고점을 기록했지만 올 들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덩달아 월평균 투자유치 금액도 쪼그라들었다. 2022년 상반기 월평균 투자금액은 1조1812억2000만 원이다. 지난해 하반기 월평균 투자금액 1조2167억9000만 원(665건) 대비 3%가량 줄었다. 월평균 355억원의 투자 금액이 빠졌다. 2021년 상반기 월평균 투자금액은 7379억9000만 원(521건)에서 하반기에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지만 올 들어 월평군 투자금액 흐름도 하락세로 반전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관계자는 “초기 기업에 대해 가능성만 보고 투자를 하지 않고 성장 기대감 만으로 기업가치를 높여온 업체들도 실적이 없으면 기존 투자를 회수하거나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 본격적인 구조조정 시기에 들어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건수가 늘었는데 규모가 줄었다는 점이다. 소규모의 초기 기업(3년 이하) 투자는 늘어난 반면 후기 기업(7년 이상) 투자는 대폭 감소했다. 2021년 4분기에 초기 기업 투자는 24.2%였지만 올 상반기 28.2%로 증가했다. 반면 후기 기업 투자는 지난해 4분기 30.5%에서 올 상반기 25.8%로 감소햇다.
특히 10억 미만 소규모 투자가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2022년 상반기에 10억 미만(시드머니 단계) 투자 비율은 53.3%(520건)으로 2021년 상반기 10억 미만 47.66%(244건)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100억원 미만 소규모 투자가 전체의 82%를 차지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눔코리아(6027억원), 티몬(3050억원), 뤼이드(2000억원) 등 2000억원 넘는 투자가 4건이나 진행됐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2350억원)만 2000억원 이상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진 분야는 핀테크(8357억원)였다. 가상 자산 거래소 분야에 대한 투자도 활발했다. 투자금 회수도 상대적으로 활발했다. 지난해 상반기 29건이던 인수·합병 건수는 올해 상반기 56건으로 93% 늘었다.
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 상황 탓에 소규모 투자금이 흩뿌려지고 있으나 중·후기업은 일부 기업 위주로 큰 투자금만 몰리면서 차별화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했다. 하반기 투자 시장 전망도 불투명한 편이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흐름 영향에 경기 악화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하반기에는 투자 규모가 상반기보다 위축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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