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가 홍콩 증시에서 이중 상장을 신청한다. 상장 기준이 다소 엄격해지는 조건임에도 홍콩 증시를 미국 증시에 보조적 수단이 아닌 동등한 거래 시장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이다. 홍콩의 세계 금융 지위를 유지하려는 중국 당국과 보조를 맞추는 동시에 중국 본토 자금의 수혈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알리바바는 26일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이사회가 경영진에게 홍콩증권거래소 ‘주요 상장(primary listing)’ 권한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관련 절차가 연말까지 마무리되면 알리바바는 미국과 홍콩 증시에 이중 상장사가 될 전망이다.
알리바바는 미국 뉴욕 증시에 주요 상장을, 홍콩 증시에는 보조적인 수준의 ‘2차 상장(secondery listing)’을 해 놓은 상태다. 홍콩 증시에서 2차 상장을 주요 상장으로 바꾸려면 신규 상장에 준하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알리바바를 비롯해 미국에 먼저 상장하고 홍콩 증시에 추가 상장한 기업들은 그동안 홍콩 상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2차 상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홍콩 증시를 최초 상장 또는 주요 상장 시장으로 삼을 경우 상장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주 거래 시장이 미국이고 홍콩은 보조 시장인 만큼 이 같은 방법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문제는 홍콩에 2차 상장을 하면 상하이·선전 증시와 홍콩 증시 간 교차 거래 제도인 후강퉁·선강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중국 본토의 투자자들이 홍콩 증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주식을 거래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시장에서는 알리바바가 홍콩에서 주요 상장을 마치고 후강퉁과 선강퉁 거래 대상에 포함되면 본토발 투자 자금이 추가로 유입될 수 있어 알리바바 주식 수급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알리바바도 "이중 상장 지위는 투자 기반을 넓히고 유동성을 증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중국과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알리바바가 중국 당국에 비위를 맞추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은 자국 기업들의 홍콩 증시 상장을 유도해 홍콩의 세계 금융 중심 지위가 유지되도록 하고 있다. 보다 많은 중국 기업이 홍콩 자본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알리바바의 결정이 미중 회계감독 권한 갈등으로 미국 증시 강제 상장 폐지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다른 여러 중국 기업들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알리바바의 행동은 다른 기업들이 이를 뒤따르게 격려할 수 있다"며 "미국 당국이 회계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중국 기업들을 자국 거래소에서 내쫓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홍콩이 대체지로 굳어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이중 상장 추진 소식에 홍콩 증시에서 알리바바 주가는 장중 5% 이상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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