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8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한 협력 업체 직원들을 원청인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사내 하도급을 활용하는 다른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법원의 판결대로라면 거의 대부분의 사내 하도급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사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사내 하도급 직원들을 포스코가 직접 지휘 감독했느냐 여부였으며 그중에서도 포스코 사내 전산망인 ‘전산 장치를 이용한 생산관리시스템(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을 사내 하도급 업체들과 공유한 것이 직접적이고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로 볼 것이냐가 쟁점이었다.
MES는 전산을 통해 작업 내용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작업 효율성을 높이고 안전을 강화하는 시스템인데 대법원은 MES 활용은 직접적인 작업 지시에 해당하는 만큼 불법 파견이며 따라서 직접 고용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소송을 주도한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 사내 하도급 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주장했다. 하청지회는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포스코는 모든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하청 노동자가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불법 파견 추가 소송단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원에는 포스코를 상대로 총 9차까지 근로자 지위 확인을 위한 소송이 계류 중이며 이 소송에는 19개 협력사 1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나머지 협력사 직원들까지 소송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는 100곳 안팎의 사내 협력사에 1만 5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소송에 참여, 승소해 포스코 직원과 같은 수순으로 임금을 올려준다고 가정하면 연간 인건비가 5000억 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문제는 MES를 활용해 작업 내용을 공유하는 사례가 포스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크레인 운전, 기계 정비 등의 업무를 주로 하는 현대제철 협력사 직원들도 직접 고용을 주장하며 MES 사용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현재 상당수의 제조 업체들이 MES를 통해 사내 하도급 업체들과 작업 내용을 공유하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이들을 모두 직고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했다.
이밖에 한국GM, 현대차·기아의 사내 하도급 직원들도 법원을 상대로 불법 파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현대위아 사내 하도급 업체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사례 말고도 수많은 유사 소송이 진행 중일 것”이라고 했다.
재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제조업의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총은 “하도급은 생산 효율화를 위해 독일·일본 등 철강 경쟁국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보편적 생산 방식”이라며 “특히 특정 제품 자체의 생산을 완성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의 일부도 얼마든지 도급계약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법원은 MES를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로 판단했지만 경쟁국인 독일과 일본 등에서는 MES를 도급 관계에서 활용했다고 불법 파견으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사내 하도급을 불법 파견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질 경우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자리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법 개정 등을 통해 불법 파견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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