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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데 한미 금리마저 역전

경제학자 10명 중 6명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평가

정부·한은은 “스태그플레이션 걱정할 단계 아냐”

美·中 경기 둔화에 수출 타격…소비 영향도 가시화

한미 금리 역전에 통화정책 셈법 복잡해져





최근 우리나라 대표 경제학자 절반 이상이 현 경제 상황에 대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초기 진입 단계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9월이나 10월로 예상되는 물가 정점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경기 침체 우려는 갈수록 커지는 상황입니다. 물가와 성장의 상충관계를 고민하는 것도 어려운데 미국이 정책금리를 75bp(1bp=0.01%포인트)씩 두 번 올리면서 연말로 예상됐던 한미 금리 역전 시기가 7월로 앞당겨졌습니다. 복합위기 속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대응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경제학회는 이달 11일부터 25일까지 경제학자 39명을 대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주제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물가 상승과 경기 부진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54%가 ‘징후가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진입 단계’라고 답변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상당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 5% 답변까지 더하면 10명 중 6명이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본 셈입니다.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난치병으로 불릴 정도로 정책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물가 상승을 막으려면 기준금리를 올려서 소비나 투자 등 수요 압력을 줄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경기는 어려워지고 실업자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린다면 돈이 풀려 물가가 더 오르게 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물가는 더 오르고 실업자도 늘어나면서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이번 한국경제학회 설문에서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물가는 상승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인 경기후퇴를 시작되지 않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기 진입 단계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스태그플레이션 자체는 진행 중인 상황으로 이러한 측면에 따른 위험성과 불안요인이 반영되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 불안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고 한 곽노선 서강대 교수 역시 “본격적인 경기 부진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공급 측면의 충격이 지속될 경우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수 있다”며 우려했습니다.

이창용(왼쪽부터) 한국은행 총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2022.07.28


다만 아직까지 정부와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성장세가 잠재성장률(2.0%)을 웃돌고 있는 만큼 경기침체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외부 상황이 변하면 더 나빠질 수 있지만 아직까지 2% 밑으로 성장률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공개 강연에 나선 서영경 금융통화위원 역시 “전 세계적으로 S(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금리 인상에 따른 성장률 감소 효과도 아직 감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2분기 성장률이 0.7%로 시장 예상치(0.3%)보다 높게 나오면서 선방 중인 것은 맞습니다. 수출이 전기 대비 -3.1%를 기록하면서 감소 전환하긴 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민간소비가 3.0% 상승하면서 회복세를 견인했습니다.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 침체 우려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2.3%로, 중국은 4.4%에서 3.3%로 각각 낮췄습니다. 우리나라 연간 성장률 전망도 2.5%에서 2.3%로 내렸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경기 둔화는 이미 감소 전환한 수출에 더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한은이 글로벌 산업연관분석을 통해 분석한 결과 중국의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우리나라 수출증가율은 0.34%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과 EU 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졌을 때도 수출증가율은 각각 0.21%포인트, 0.19%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으로 소비 위축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을 때 소비가 최대 0.15% 줄어든다는 다른 분석 결과도 내놓은 상태입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각 상품별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며 장을 보고 있다. 오승현 기자 2022.07.10


물가는 높은데 경기는 꺾이는 상황에서 금통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새로 금통위에 합류한 신성환 금융통화위원은 취임사를 통해 “수요 측면 인플레이션 압력과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있는 한편으로 경기 둔화 가능성, 과도한 민간 부채의 연착륙 유도, 자본유출 위험 등 함께 고려할 사항이 산재해 있다”라며 “이러한 사항들 간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서영경 금통위원도 최근 강연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동시에 성장의 하방압력이 확대되면서 성장·물가 간 상충관계가 심화된다면 정책 결정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금리마저 2년 5개월 만에 역전됐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정책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해 2.25~2.50%로 올리면서 한은 기준금리 2.25%보다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과거 세 차례 금리 역전 시기 모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던 만큼 이번에도 자금 유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한은은 오히려 하반기에 자금이 소폭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내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어나면서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언제든 커질 수 있습니다. 외환 수급도 지난해 4분기 이후 순유출 전환됐다고 합니다. 추가적인 원화 절하 압력을 막으려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미국과는 달리 가계부채가 심각해 빠르게 올릴 수도 없습니다. 이 총재가 이달 금통위에서 말했듯이 당분간 25bp씩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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