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에 들어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자택에서 머물며 정국 구상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처럼 휴가 때 지방을 찾기로 한 일정마저 취소했다. 그만큼 20%대로 하락한 지지율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휴가에서 돌아오는 윤 대통령이 내놓을 국정 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당초 2~3일 지방에서 휴가를 보내는 안이 검토 중이었는데 최종적으로 검토를 하다가 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이날부터 닷새 동안 주로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통령들의 ‘관저 휴가’와 같다.
대통령실은 최근까지 윤 대통령이 휴가 기간 지방을 찾을 예정이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날 윤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지방 일정은 취소됐다. 짧은 휴가 기간 동안 지방 일정마저 잡지 못할 만큼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대통령이 관저에서 휴가를 보냈을 때도 여지없이 정국은 살얼음판이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의결되자 8월 초 관저에서 휴가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2년 연속 관저에서 휴가를 썼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서울에 머무르면서 향후 정국을 구상하고 산책하면서 휴식을 취할 것”이라며 “휴가 피크철에 대통령이 움직이면 해당 지역에서 휴가를 즐기시는 분들께 폐를 끼칠 수도 있고 여러 점들을 고려해서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휴가 기간 자택에서 머물며 각계각층의 인사를 비공개로 만나고 의견을 들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휴가에서 돌아온 윤 대통령이 내놓는 메시지에 따라 향후 정국이 요동칠 수 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휴가 복귀 후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는 이른바 ‘청남대 구상’으로 정국을 돌파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참모진 교체라는 강수를 두며 국민들에게 쇄신 의지를 알렸다. 윤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제시할 정치적 비전을 들고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인적 쇄신과 함께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노동과 연금·교육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메시지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취임 100일 즈음인 광복절에는 특별사면을 통해 국민들에게 통합의 정치를 강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통령이 공식 휴가에 들어가며 참모들에게 당부한 지시도 이 같은 방향과 맞닿아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김대기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에게 코로나19 방역, 치안 상황 등을 잘 챙기라고 당부했다. 또 “다가오는 추석 물가가 불안하지 않도록 요인을 분석해 미리미리 대비하라”고도 지시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와 관련해서는 “원청과 하청 노조 간 임금 이중구조 문제도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모두 민생 경제, 국정 개혁과 관련된 사안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쇄신 방향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휴가 중에 공개된 일정이 없다는 이유로 관계자들을 인용한 억측이 나온다”며 “‘휴가 끝에 뭘 한다’ ‘어떤 생각 중이다’ ‘쇄신한다’ 등의 말이 나오는데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충분히 해서 다음에 일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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