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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칩4' 선택 직면한 韓, 카자흐를 보라

국제부 이태규기자





올해 1월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러시아는 공수부대를 포함한 2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해 카자흐스탄 정부를 도왔다. 하지만 한 달여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의 ‘은혜’를 입은 카자흐스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침공을 지지하기는커녕 유럽으로 자국산 원유 수출을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미국 정부 대표단을 자국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의 핵심 동맹으로 남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자국과 유사점이 많은 옛 소련 국가인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하자 한편으로 미국 등 서방에 손을 내밀어 ‘보험’을 들어 놓으면서 러시아에도 아예 등을 돌리지 않는 양면적 입장을 취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섬세한 균형 외교”라고 추켜세웠다.

카자흐스탄의 상황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 우리와 비슷하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동맹체 ‘칩4(한국·미국·대만·일본)’를 추진하며 우리 정부에 이달 말까지 회의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중국은 “한국이 칩4 동맹에 참여하면 한국 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카자흐스탄식 절묘한 외교를 구사하는 것이 어떨까.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결정한 후 중국으로부터 교묘한 경제 보복을 당한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경제·산업적 측면과 한미 관계를 고려할 때 칩4 동맹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중과의 관계에서 모호한 표현으로 균형을 잡고 시간을 버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 시간도 우리에게 그리 불리하지 않다. 칩4 동맹을 주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거쳐 임기 반환점을 돈다. 통상적으로 오는 레임덕 시기까지 고려하면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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