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 유지를 위해 재정준칙 입법화를 선언했다. 이는 올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인 재정적자를 내년부터 3% 이내로 묶는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제도다. 나라 경제의 성장세와 비례해 살림살이를 짜도록 해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재정 폭주’를 막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재정준칙이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도 재정준칙 통과를 외쳤지만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된 바 있다.
특히 169석의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당론을 내세울지가 아직 불투명하다.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발언에서는 야당도 재정 건전성 확대에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 정부 때는 “돈을 곳간에 놓아두면 썩는다”는 논리까지 내세워 확장재정을 펼치더니 정권이 바뀌자 변덕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가 재정이 축소되는 일을 막겠다”고 밝혔으며 이튿날에는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한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발언의 속내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같은 야당 지도부의 발언이 모두 법인세 인하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튼튼한 국가 재정의 논리적 초점이 지출 구조 조정이 아닌 국세 수입 축소 방어를 내세운 반(反)법인세 인하에 맞춰진 셈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1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1.4%포인트(3.7%→2.3%)나 깎는 등 경기 침체 징후가 뚜렷한데 지출예산을 구조 조정하지 않고 건전 재정을 이뤄낼 방법이 없다”며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재정준칙이 일종의 ‘협상 카드’로 쓰여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올해 사상 최대 수준의 지출 구조 조정을 예고한 상태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구속 장치가 되는 재정준칙을 여야가 모두 반기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