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부여하는 방안이 위법하지 않다는 외부 법률 자문 결과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밀어붙였던 대표소송의 수탁위 위임안은 경영계의 강한 반발로 논의가 보류됐으나 국민연금 운용의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이 같은 자문 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에서 의뢰해 ‘국민연금수탁자지침 개정안’의 위법성을 검토한 로펌 3곳이 최근 ‘적법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로펌들은 대표소송의 경우 지침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정책 결정 주체인 기금운용위원회에 결정 권한이 있다는 취지에서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탁위에 소송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고 절차적 정당성도 결여됐다는 경영계의 주장에 정면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난 정부가 대표소송의 권한을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지침 개정을 추진했으나 논란이 커지자 기금위 소위는 법률 자문을 5월에 의뢰했다.
이번 법률 자문 결과에 경영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국내 자본시장의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수탁위에 주주대표소송 결정권이 주어지면 소송 남발이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국민연금은 삼성그룹 계열사,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 20여 곳에 기업 주주가치 훼손 사건 등에 관한 사실관계를 묻는 주주 서한을 보내면서 논란이 커졌다.
9월에 열릴 기금위는 이번 자문 결과를 토대로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이 공석이라 심의·의결이 계속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 리더십 부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논의가 공회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의 위법성을 따지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법률 자문이 ‘적법’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일원화하는 개정안에 대해 위법 논란이 커지자 기금운용위원회는 2월부터 논의를 중단했다. 그 사이 복지부는 외부 법률 자문을 진행했으며 개정안이 적법하다는 자문 결과가 이번에 나왔다. 이 같은 자문 결과를 토대로 9월 기금위에서 지침 개정 논의가 재개될 예정이다. 문제는 국민연금 운용의 사령탑인 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이 아직 공석이어서 논란이 큰 지침 개정안에 대해 신속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영계 역시 자칫 대표소송 논란이 지속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주주대표소송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셈이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주무 부처인 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수탁자 지침 개정안의 위법성을 자문한 로펌 3곳은 ‘적법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로펌들은 대표소송이 지침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정책 결정 주체인 기금위에 결정 권한이 있다는 취지에서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자문 결과는 수탁위를 대표소송 결정 주체로 일원화하는 개정안 추진에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까지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은 공단 기금운용본부가 대표소송 여부를 결정하고 예외적 사안에 한해 복지부 주관 기금위 산하 기구인 수탁위가 맡는 것으로 규정해왔다. 그러다가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대표소송을 적극 추진한다는 명분을 들어 그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대표소송은 수탁위의 간사인 기금운용본부의 사전 검토 결과 등 엄격한 검토 절차를 통해 진행된다”며 “이사의 법령·정관 위반 행위가 관련 판결 등에서 확정되고 기업의 손해액이 구체적·객관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며 기금의 평판 훼손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고 승소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돼야 실행하는 등 엄격한 사전 검토 절차를 거쳐 대표소송 제기 여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수탁위가 소송 제기 권한을 갖게 되면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수탁위는 위원장 1명과 위원 8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되며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가 3명씩 추천한다. 현재 수탁위에는 한국노총(2명)과 민주노총(1명)이 추천한 3명과 소비자단체협의회가 추천한 1명 등이 포함돼 있어 시민·노동 단체 목소리가 강하게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위의 법적 지위가 다르다는 점도 소송 남발 우려에 한몫한다. 기금운용본부는 내부 투자위원회 등을 통해 소송이 타당한지, 향후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각도로 분석한다. 소송 결과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반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위는 비상설 기구로 소송의 결과에 책임을 묻기 힘든 한계가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기업 경영을 좌우할 수 있는 주주대표소송이 여론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때마침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국내 20여 개사에 기업 현안에 관한 질의서를 전달하면서 이 같은 우려에 불씨를 더했다. 대부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전력이 있는 기업들이었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지침 개정을 눈앞에 두고 수탁위의 존재감과 함께 대표소송 의지를 드러내는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사가 3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라며 “주주대표소송 대상이 지분 0.01% 이상인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의 주요 기업 대부분이 영향권에 들어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이번 법률 자문 결과에 대응하기 위해 다각도로 준비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별도의 법률 자문을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물론 이번 자문 결과의 흠결을 지적하는 보고서도 마련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자문 결과와 별개로 9월 기금위에서 진행될 논의가 리더십 공백으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정안 논의의 선장 역할을 할 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가 공석인 탓이다. 복지부 장관은 정호영·김승희 장관 후보자가 사퇴함에 따라 전임 정부의 권덕철 장관이 5월 25일 퇴임한 후 지금껏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 또 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는 전임 김용진 이사장이 4월 18일 사퇴한 후 지금까지 3개월 넘게 비어 있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박정배 기획이사가 이사장 대행을 맡아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9월 기금위 내 소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하겠지만 큰 틀을 짜야 할 정부가 연금 사령탑을 비워두면서 진전을 이룰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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