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1942~2020) 전 삼성 회장의 컬렉션 기증 이후, 미술 향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다. 아트페어·경매를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활황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올 하반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비엔날레’가 잇달아 개막한다. 격년제 국제 미술제를 의미하는 올해 ‘비엔날레’가 대전,부산,창원을 지나 제주에서 열린다. 최신 미술경향을 만나고, 휴가·방학을 맞아 여행하는 기분으로 ‘비엔날레 아트투어’는 어떨까? 한동안 비엔날레가 지역 축제의 대안처럼 우후죽순 생겨나 비판받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각 비엔날레가 정체성과 역사성의 강화를 통해 경쟁력을 찾아가는 추세다.
과학과 예술의 접목으로 특화 한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가 2일 막을 올려 90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미래도시’를 주제로 대전시립미술관을 비롯해 대전창작센터가 위치한 대흥동 등 총 5곳에서 진행된다. 통상 비엔날레는 외부 예술감독을 선임해 진행하지만, 올해는 선승혜 관장 등 미술관 자체 인력이 기획을 주도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와의 협업은 이 비엔날레만의 특징이다.
수천 개의 드론으로 반딧불이 숲의 모습을 재현해 멸종위기 원시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켈리 리처드슨의 작업, 자연과 도시의 관계를 탐구하는 켄이치로 타니구치가 대전의 지형을 항공사진으로 찍어 조각으로 표현한 ‘시티 스터디’ 등이 눈길을 끈다.
오는 9월3일 개막하는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축제일 뿐만 아니라 부산의 역사와 속살을 들여다보는 도시여행의 묘미를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근대도시 부산의 출발점인 부산항 제1부두, 6·25 피란민들의 애환이 깃든 영도의 폐공장과 초량동 산복도로 주변의 집 한채가 전시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전시감독을 맡은 김해주 전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를 주제로 잡아 26개국 64개 팀의 작가를 불러 모았다. 김 전시감독은 “어망과 그물, 깡깡이 아지매, 금정산성막걸리, 광케이블 등 부산과 관련이 있는 소재를 사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면서 “지역성을 띠지만 전시의 주제처럼 세계 여러 곳과 연결되면서도 교차, 반복되는 구조를 갖는 독특함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에서는 10월7일부터 제6회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열린다. ‘조각’이라는 장르 특화형 비엔날레로 시작했지만 융복합 예술로 확장을 시도해 전시주제를 ‘양자물리학과 조각장르의 확장’으로 설정했다. 25개국 90여 팀이 참가한다. 진해 중원로터리와 흑백다방, 마산 창동센터와 3·15 해양누리공원 등 전시장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울 듯하다.
11월16일에 개막하는 제주비엔날레는 내년 2월12일까지 겨울을 관통한다. 2013년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박남희 예술감독이 제주비엔날레를 맡았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이 주제다. 박 예술감독은 “자연공동체의 신화와 역사를 만들어온 양생(養生)의 땅 제주에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본래의 생명 가능성을 예술로 사유할 것”이라며 “자연, 인간 등 모든 객체가 함께 살기 위해 달의 우주적 관용과 땅의 자연적 공명을 실험하는 예술의 장을 열겠다”고 말했다. 주제 전시관은 제주시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이지만 가파도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와 서귀포시 국제평화센터에서도 함께 열린다. 제주비엔날레는 2017년에 처음 열렸지만, 제2회 제주비엔날레가 김인선 예술감독을 선임하고도 자율성 침해, 불공정계약과 갑질 파문 등 불협화음을 냈고 결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연기,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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