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공예의 정수로 꼽히는 고려청자와 나전칠기에 공통점이 있다. 몸체 위에 다른 재료를 덧붙여 문양을 내는 상감(象嵌)기법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에 금속 표면에 선을 새겨 금이나 은을 끼워 꾸미는 금입사, 은입사 또한 ‘상감’의 변형이다. 조선 후기 목공예에서는 나전을 대신해 거북 등껍질인 ‘대모’, 상어 껍질인 ‘어피’, 쇠뿔을 얇게 편 ‘화각’ 등이 화려함을 더했다.
우리 공예의 정체성을 아우르는 ‘상감’ 특별전이 강남구 신사동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한창이다. 부제는 ‘이질적인 것들의 어우러짐’. 개관 40주년 특별전으로, 상감의 정신이 계승된 현대미술까지 총 4개 전시실에 285점의 작품이 엄선됐다.
전시는 4층에서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첫 전시작 ‘청자 상감 도판’은 장식용 타일로 추정된다. 께가 4~5㎜ 밖에 되지 않는 얇은 청자 판에 상감기법으로 꽃·학·구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여름용 침구로 사용된 청자 베개도 고려인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매병과 잔,완 등 기형별로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 맑은 가을 하늘을 닮았다고 하는 푸른 청자 위에 백토를 넣어 학과 꽃을 그리고, 어둑한 자토로 날개깃과 눈동자, 줄기와 잎을 그리곤 했다. 보물로 지정된 박물관 소장품 ‘청자 상감동채 연화당초용문병’은 청자에 백(白)상감으로 번개·국화·운학무늬를 꾸몄고, 동(銅)을 산화시킨 동채 안료로 여의주와 용 비늘을 장식해 상서로움을 강조했다. 백토 알갱이를 하나씩 점처럼 찍은 ‘백퇴화점’으로 장식한 석류형 주전자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씨가 많은 석류는 자손 번창을 뜻한다. 동·식물의 형태로 청자를 만드는 것은 고려 만의 특징이다.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연구부장은 “중국에도 상감기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우리처럼 오랜 기간 이어져 우수한 자기를 만들어내는 장식기법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청자는 분청사기로 변화했지만 상감 기법은 여전히 성행했다. 보물로 지정된 분청사기 4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고려청자의 무늬가 정교하고 귀족적이라면, 분청사기의 문양은 대범하고 추상적 경향을 보인다. 버드나무, 모란, 물고기 등 자주 사용되던 문양이 고려 청자와 분청사기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2세기부터 16세기 전반까지 400년의 도자 역사를 112점의 유물을 통해 한 전시장에서 보여준다. 보물만 6점이 출품됐다.
3층 전시실은 금·은입사 작품들이 눈부시다. 철로 만든 ㄷ자 모양 자물쇠에 금입사 용무늬 장식을 더한 유물은 고려 왕궁에서 사용됐을 것으로 전한다. 2층은 나전으로 장식한 다채로운 목가구를 선보였다. 섬세한 무늬를 하나하나 제대로 살펴보려면 최소 3번 이상은 관람해야 할 듯하다.
호림박물관은 유화증권 명예회장을 지낸 호림 윤장섭(1922~2016)이 출연한 유물과 기금을 바탕으로 1982년 10월 설립됐다. 이병철의 호암미술관, 전형필의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손꼽힌다. 국보 8건, 보물 54건을 포함해 문화재 1만8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신사분관은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서 영감을 받아 연꽃과 도자기를 변형해 설계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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