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기준금리 역전에도 외국인의 국내 채권 순매수 ‘사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전달에 비해 매수액은 줄었지만 6조 원대에 육박하는 순매수로 인해 7월 외국인들의 국내 채권 보유 잔고가 한 달 만에 또다시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와는 달리 외국인은 8월 들어서도 국채 순매수 규모를 꾸준히 키우는 모습이다. 한국 기초체력 대비 여전히 낮은 채권 가격이 투자 매력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이자·양도소득 비과세 등 제도 개편 움직임 역시 수급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금리차 자체보다는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자금 흐름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국인은 7월 국내채권 시장에서 5조 8330억 원 규모를 순매수했다. 총 11조 4110억 원어치를 사들였던 6월 대비 순매수 규모는 줄었지만, 7월이 한·미 기준금리 역전 우려가 가장 심화됐던 시기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순매수세 유지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이에 7월 말 기준 외국인의 국내채권 보유 잔고는 233조 5341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6월 말(228조 9045억 원)과 비교하면 1달 만에 4조 6296억 원이 늘어났는데, 이는 올 들어 월간 최대 증가폭이다. 외국인의 국내채권 보유 잔고는 올 1월 말 217조 7996억 원 수준에서 매달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이 7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인상하면서 한·미 금리역전이 현실화됐지만, 한국의 안정적 신용등급 대비 저렴한 국내 채권의 가격이 여전히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8월 들어서도 국내채권을 2조 원 가까이 사들이고 있다. 현물뿐 아니라 국채 선물 매수세 역시 눈에 띈다. 10년물 국채 선물에 대해 외국인은 8월 1만 계약 이상의 순매수를 기록 중이다. 안정적으로 평가 받는 한국의 신용등급(AA급)을 고려하면 현 채권 금리 수준이 여전히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 이후 외국인의 국채 선물에 대한 기술적 매도 신호가 해소됐다”며 “새로운 모멘텀이 없다면 외국인의 순매수 압력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채 투자 활성화를 위한 국내 제도 변화 움직임 역시 외국인 자금 유입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기획재정부는 비거주자와 외국법인의 국채 등 이자·양도소득 비과세 제도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국채 이자소득에 부과되던 14%의 세율이 내년 1월 1일부터는 비과세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편으로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추진에 있어 발행잔액·신용등급 등 정량적 요건뿐 아니라 세금 이슈 등 정량적 요건 역시 충족된 점도 긍정적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향후 한·미 금리차 자체보단 원·달러 환율 흐름이 외국인 자금 유출입 향방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원화 약세의 대내적 요인이었던 수출 경기 둔화,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이 상당 부분 선반영된 점은 긍정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유럽 에너지 대란 등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분석이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럽 통화 약세 심화 시 원·달러 환율 상방 압력이 부각되며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가을 유럽과 러시아 간 협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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