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일본통’인 정성춘(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일본의 금융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우리보다 앞섰다고 하지만 녹록지 않은 사회경제 여건에 등 떠밀린 늦은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며 “우리 정부가 일본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실기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부원장은 1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생산성과 활력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면서 “(지역상사·인력소개업 등과 같이) 은행 업무 범위 확대는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줘 더 나은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하는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원장은 일본 금융 당국의 은행 업무 범위 확대 배경을 △디지털전환(DX) △지방 창생 △이퀄 푸팅(평등한 경쟁 조건) 등으로 꼽았다. 그는 우선 “일본 은행이 오랜 초저금리 환경에서 여전히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며 디지털 혁신을 방치하는 등 공멸할 지경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구 감소 등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며 (죽어가는) 지방 중소기업과 지방은행을 살리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며 “테크·유통 등 산업자본이 은행업에 쉽게 진출하는 등 은행권의 누적된 불만도 규제 완화의 배경이 됐다”고 덧붙였다.
정 부원장은 은행 규제 완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전이, 이해상충 등의 위험성을 일본 금융 당국이 감수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금융 당국은 의회 논의 과정에서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하겠다고 어필했다”고 부연했다.
정 부원장은 일본 금융청이 어렵사리 은산분리 등 규제 완화의 첫 삽을 떴지만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은행업과 비은행업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금융, 특히 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 지역경제 악화, 지방은행 경영 기반 약화 등은 하루아침에 개선되기 어려운 부분들”이라며 “지방은행들 스스로도 자구책을 모색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에서는 1948년 옛 증권거래법 제65년 제정에 따라 70년 이상 유지된 ‘은증분리(은행업과 증권업을 분리)’ 칸막이도 하나둘 치워지고 있다. 금융지주 산하 은행과 증권사 간에 정보 교류를 막아놓은 파이어월(방화벽) 허물기가 지난해 외국 기업을 시작으로 올해 자국 상장기업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정 부원장은 “글로벌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은 여전히 규제 강도가 세다. 글로벌 은행은 증권업을 포함해 종합적인 금융 서비스를 다 하고 있지 않느냐”며 “일본에서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규제 완화의 목소리는 계속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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