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규모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 채무자’ 비중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저축은행, 30대 이하, 중·저소득층에서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어 금리가 계속 오를 경우 다중 채무자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한국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 상 약 100만 명의 신용정보를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자 가운데 22.4%가 다중 채무자였다. 이는 지난해 말(22.1%)보다 0.3%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집계가 시작된 2012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 비중을 전체 가계대출 차주 수(1989만 4000명)에 대입하면 다중 채무자는 445만 6000명에 달하게 된다.
금융권별로 저축은행의 다중 채무자가 가장 많았다. 저축은행의 경우 1분기 말 대출 잔액 기준으로 76.8%, 차주 수 기준으로 69.0%가 다중 채무 상태였다. 모두 지난해 말과 비교해 0.9%포인트, 1.5%포인트씩 늘었다. 반면 일반 은행의 다중 채무자 비율은 1분기 말 대출 잔액과 차주 기준 각 27.6%, 25.4%로 집계됐다. 전년 말 대비 차주 수는 0.2%포인트 높아졌지만, 잔액은 0.3%포인트 낮아졌다.
연령별로 40대의 비중이 32.6%로 가장 컸다. 이어 50대 28.0%, 30대 이하 26.8%, 60대 이상 12.6% 순이었다. 40대 비중은 지난해 말보다 줄었지만 30대 이하와 50대는 0.6%포인트와 0.2%포인트 늘었다. 특히 30대 이하의 경우 변동금리 상품이 대부분인 전세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기 부담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20·30대가 은행에서 빌린 전세대출 잔액은 96조 3672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조 1915억 원(2.3%) 늘었다. 4월 말 기준 은행권 전세대출을 차주 가운데 20·30대 수는 총 81만 6353명으로 전체 차주(133만 5090명)의 61.1%를 차지해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말(56.5%)보다 5%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소득 수준별로 고소득자(소득 상위 30%)가 65.6%를 차지해 가장 많았지만 고소득자 비중은 지난해 말보다 0.3%포인트 줄어든 반면 중소득자와 저소득자는 각 0.2%포인트, 0.1%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저축은행 등 2금융권과 30대 이하, 중·저소득층 다중 채무 비중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금리가 더 상승할 경우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금리가 상승할 경우) 취약차주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그동안 대출을 크게 늘린 청년층과 자영업자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윤 의원도 “다중 채무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청년·저소득층이 늘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이런 취약차주들의 고금리 대출을 재조정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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