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요국들이 자국의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전면 개편하거나 전기차 보급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우리도 보조금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급속한 전기차 보급이 중국 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럽 국가들은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있다. 영국은 최근 2011년부터 시행해온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종료했다. 5000만 원 이하 전기차를 구매할 때 최대 240만 원을 주던 보조금을 없앴다. ‘전기차 천국’인 노르웨이도 지난달 전기차에 주는 혜택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독일도 2023년부터 보조금 지원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삭감안을 발표했다. 향후 2년간 배정된 34억 유로의 보조금 예산이 소진되면 지급을 중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업이 구매하는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에 대한 보조금을 내년부터 삭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유럽의 이런 움직임은 경제안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빠른 전기차 보급이 배터리 원재료에 대한 중국 의존도만 높이고 자국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카를루스 타바르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부터 배터리 공급이 부족해져 아시아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도 재난 발생 시 비상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외부 전력 공급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국 전기차를 우대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가 장려하는 배터리 교환 서비스(BaaS) 탑재 차량과 자국 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최근 미국 상원도 본토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배터리의 핵심 자재를 공급받고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7500달러)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지만 우리 기업의 피해도 예상된다.
반면 우리는 전기차 보급 목표에만 몰두한 나머지 외국산 전기차의 배만 불리고 있다. 실제 이날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산 전기 상용차(버스·화물차)는 국내에서 1351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159대)보다 749% 급증했다. 점유율은 지난해 1.1%에서 올해 6.8%로 뛰었다. 특히 중국산 전기버스는 같은 기간 436대가 팔려 절반에 가까운 48.7%의 점유율을 보였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버스가 보조금까지 받아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승용 전기차 부문도 중국산의 공습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중국 비야디(BYD)는 내년부터 승용 전기차를 국내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급격하게 오른 원자재 가격으로 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기준(5500만 원 이하 100%, 8500만 원 이하 50%)을 맞추기 어려운 반면 저가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산은 기준 충족이 상대적으로 쉽다.
업계에서는 우리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 기업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보조금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만기 협회 회장은 “미국에 한국산 무차별 대우를 요청하되 필요하면 한시적이라도 상호주의 원칙 적용 여부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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