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저지주 체리힐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립 명문인 하버퍼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작가를 꿈꿨다. 학부 졸업 이후 우연한 계기로 1986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그는 회사 측 후원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다니며 뱅커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그는 작가의 꿈을 접지 않았고 2020년 첫 소설인 ‘오퍼링스(Offerings·제물)’를 내놓으며 정식으로 등단했다.
그는 “할리우드 제작사인 어나니머스스튜디오에서 오퍼링스를 영화화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면서 “소설이지만 사적인 이야기도 담겨 고민을 했는데 영화 ‘파친코’를 보며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재미있을 것 같다. 내년이면 60세인데 이쯤되면 ‘재미’가 인생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며 웃었다.
그는 오퍼링스를 출간하며 당초 두 권의 책을 내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오퍼링스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얘기가 전개되지만 두 번째 작품은 완전히 한국적인 스토리로 대호(大虎)가 등장하고 훨씬 과거의 일을 다룰 것”이라고 살짝 소개했다.
김 회장의 도미(渡美) 후 가족도 이민을 왔지만 백인과 유대인 위주의 폐쇄적인 월가에서 생존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골드만의 투자은행(IB) 부서에 아시아인은 저 한 명뿐이었다”면서 “매일 밤을 새우느라 코피를 흘렸는데 아내가 제 젊은 시절을 ‘휴지로 코 막고 있는 모습’으로 기억할 정도”라고 했다.
김 회장은 “고생과 노력은 당연히 했지만 아시아인이 저밖에 없어 골드만이나 살로만·칼라일에서 대부분의 아시아 거래를 자연스럽게 맡게 됐다” 면서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운’이 아니라면 어떻게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외평채 발행을 맡을 수 있었겠느냐”며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을 ‘운’이라고 했다. 그는 “겸손을 떨려는 것이 아니라 저만큼 열심히 하고, 실력이 있었던 사람들은 많았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IB 살로만에서 국내 최초의 외평채 발행을 성공시켰고, 칼라일그룹에서 한미은행을 3000억 원에 인수한 뒤 3년 만에 7000억 원에 되팔아 당시 칼라일 사상 최대 수익을 올렸다.
김 회장이 가족과 본업·소설 이외에 사랑하는 것은 야구다. 그는 최근 메이저리그에 속한 ‘워싱턴내셔널스’가 매물로 나오자 인수 후보자로 외신에 거론됐다. 워싱턴내셔널즈의 구단주가 될지를 묻자 김 회장은 “본업이 투자고 야구는 사랑하고…”라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넷째 딸인 박경아 씨와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장남은 아버지를 따라 골드만삭스에 잠시 근무했다. 하지만 장남은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를 더 닮았는지 골드만삭스를 뒤로하고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MBK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애초부터 전혀 없었다”면서 “재산 역시 많은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게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뉴욕시립공공도서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이사회의 멤버이기도 한 김 회장은 뉴욕의 도서관이 청소년의 교육과 성장을 돕는 모습에 서울시에도 300억 원을 기부해 서울시립김병주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뉴욕시립도서관도 김 회장의 그간의 기부 등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리모델링 중인 맨해튼 23번가의 브랜치(지점)을 그의 이름을 딴 ‘킴 센터’로 명명했다. 김 회장은 “기부는 기업보다 개인이 나서서 할 때 사회적 효과가 더 크다”며 “양극화를 극복할 최고의 해법도 개인의 기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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