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보유한 태양광 펀드 설정액이 3조 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6월 태양광 개발사 레즐러의 부실로 수백억 원대 손실 위기에 내몰린 이지스리얼에셋투자운용의 태양광 펀드 부실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지스를 제외한 자산운용사들은 현재까지는 태양광 펀드 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업계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급성장한 만큼 펀드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16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10대 자산운용사(지난해 순이익 기준)가 보유한 신재생에너지 펀드는 총 57개로 설정액만도 3조 7125억 원에 이른다. 이 중 태양광에 투자하는 펀드 수는 50개(88%), 설정액은 3조 1389억 원(85%)에 달한다. 6월 말 불거진 이지스자산운용의 손자회사 이지스리얼에셋투자운용의 태양광 사모펀드 부실화 우려가 전체 자산운용권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설정액 기준으로 태양광 펀드를 가장 많이 운용 중인 곳은 KB자산운용으로 드러났다. KB자산운용은 총 21개 태양광 펀드를 운용 중으로 설정액만도 1조 955억 원에 달한다. 이는 10대 자산운용사의 태양광 펀드 설정액 중 35%로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KB자산운용의 태양광 펀드 설정일은 문재인 정권 집권 당시에 집중돼 있다. 21개 태양광 펀드 중 13개 펀드(설정액 7655억 원)가 2017년부터 2022년에 설정됐다. 문재인 정권이 신재생에너지 발전 육성을 위해 무분별하게 보조금을 남발하던 시기에 KB자산운용도 태양광 펀드 규모를 대거 키운 것이다. 이 시기에 KB자산운용이 설정한 태양광 펀드는 직접투자 방식으로, 연간 목표 수익률은 3.27~6.10% 수준이다. KB증권·한화투자증권·교보증권·신한금융투자를 통해 판매됐다. 김형윤 KB자산운용 대체투자부문 전무는 “2007년부터 태양광펀드를 꾸준히 운용해 왔고, 현재까지 목표 수익률에 미달하거나 부실 징후가 포착된 펀드는 없다”고 설명했다.
신한자산운용도 태양광 펀드 운용 규모가 크다. 펀드 개수만 13개, 설정액은 9986억 원(10대 자산운용사 태양광 펀드 총 설정액 대비 31.8%)에 달한다. 신한자산운용도 문재인 정권 시기에 태양광 펀드를 집중적으로 설정했다. 13개 펀드 중 11개가 2017년에서 2022년 사이 설정됐다. 신한자산운용의 태양광 펀드는 대출 및 지분투자 펀드가 주를 이룬다. 판매사는 한화투자증권·교보증권·신한은행·DB금융투자·신한금융투자 등으로 KB자산운용 대비 다양한 편이다. 연간 목표 수익률은 3.5~8.2%까지 분포해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태양광 펀드는 총 6개로, 설정액은 4092억 원(10대 자산운용사 태양광 펀드 총 설정액 대비 13.0%)에 달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손자회사인 이지스리얼에셋투자운용의 태양광 펀드 부실 우려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모든 태양광 펀드는 문재인 정권 시기에 설정됐다. 대출 펀드가 4개, 재간접(기존 대출 펀드에 대환대출 등을 해주는 방식) 펀드가 2개다. 이 외에도 미래에셋자산운용·마스턴자산운용·삼성자산운용이 각각 설정액 319억~5489억 원 규모의 태양광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모두 자사의 태양광 펀드 부실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들은 “공사 선급금을 받고 실제 공사를 진행하지 않은 태양광 개발사 레즐러와 같은 사태는 이례적인 경우”라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 업계의 관계자는 “태양광 개발사 선정 시 업계 레퍼런스 체크와 지속적으로 공정을 확인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라며 “부실한 태양광 개발사에 일감을 주고 공사 선급금을 준 자산운용사의 도덕적 해이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태양광 펀드의 부실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양광 발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 정권 들어 신재생에너지 보조금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태양광 개발사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최근 1~2년 내 설정된 태양광 펀드의 경우 목표 수익률 달성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급격히 자금 사정이 악화해 이지스리얼에셋투자운용으로부터 공사 선급금을 받고 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태양광 개발사 레즐러와 유사한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크다.
윤 의원은 “자산운용사는 신재생에너지 사모펀드의 부실화 가능성에 대해 예방 점검을 강화하고, 금융 당국은 부실 징후가 짙어지는 만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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