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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명 새벽에 들이닥쳐 로비 점령…극단 치닫는 화물연대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직원 출근 저지 등 '아수라장'

손배소 철회·운송료 인상 두고

사측과 처우 개선 협상 평행선

"하이트가 직접 나서라"지만

도급 경영 간섭시 '불법 파견'

대우조선 노사교섭 때완 달라

정부 중재능력 다시 시험대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손해배상 소송 및 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일부 조합원은 이날 오전 6시 10분께 농성을 위해 본사 로비와 옥상 등을 기습 점거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6시 10분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 100여 명이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로비와 옥상을 기습 점거하고 시위에 나서자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조합원 10여 명이 인화 물질인 시너를 들고 옥상으로 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긴장감은 배가됐다. 김경선 화물연대 대전본부장은 “상황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극단 선택까지 하겠다는 의미”라며 “강원공장이 있는 홍천에서 시위할 때 경찰 진압을 보고 위협을 느꼈는데 이번에도 경찰 대응이 그렇게 이뤄질 경우 사용하겠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본사 직원들은 조합원들이 1층 로비 문을 걸어 잠그면서 오전 9시가 돼서야 출근할 수 있었다. 한 직원은 “직원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본사까지 불법 점거해서 이러한 피해를 주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도 이런 불법 농성이 이어질까 봐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하이트진로와 화물연대의 갈등은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점차 격화되는 양상이다. 하이트진로 화물 운송 위탁사인 수양물류 소속 화물차주 132명은 앞서 3월 화물연대에 가입한 뒤 유가 폭등에 따른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이천·청주 공장에서 파업을 진행해왔다. 수양물류는 하이트진로가 지분을 100% 보유한 계열사다. 6월 24일 화물연대와 수양물류 간 첫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으나 그사이 화물연대 조합원 132명이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고, 하이트진로는 조합원 일부를 상대로 업무방해 등 공동 불법행위로 인한 28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이에 화물연대는 2일부터 하이트진로 강원공장에서도 집회를 이어갔는데 사측과 평행선을 달리자 서울 본사 점거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화물연대 측은 “하이트진로는 수양물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데 원청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즉각 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기본권을 외친다는 이유로 화물노동자 75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며 “윤석열 정부가 공권력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하이트진로 측은 원청이 직접 교섭에 나서는 게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하도급법에 따르면 원청업체인 하이트진로가 하청업체인 수양물류와 화물차주간 협의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이트진로는 수양물류와 도급계약을 맺고, 수양물류는 화물기사와 수수료 계약을 체결했다. 현행법상 도급 기업의 경영·노무에 간섭하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



이처럼 상호 입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양측 간 ‘강대강 대치’는 더욱 강화되고 파업 시위도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화물연대는 홍천강원공장에서의 집회 기간을 당초 이달 17일에서 다음 달까지 늘려서 신고한 상태다. 농성이 장기화하면 소주·맥주 등 출고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동계에서는 화물연대의 이번 본사 기습 점거의 경우 장기간 이어온 처우 개선 요구와 구조적 교섭 문제가 엮여 있어 빠른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면서 일주일간 총파업을 했다. 화물연대는 고유가·고물가·고위험에 처한 근로 환경 개선을 사측과 정부에 동시에 촉구했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운송 회사와 계약을 맺은 화물기사들의 단체다. 화물연대와 하이트진로와 같은 화주의 직접 교섭 여부는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화물연대는 고용노동부가 노사 갈등을 중재할 법적 노조도 아니다.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을 공권력 투입 없이 노사 교섭으로 마무리한 정부의 중재 능력도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양대 노총인 동시에 화물연대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은 이날 화물연대 점거에 대한 지지 논평을 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거액의 손배소를 앞세운 쟁의권 무력화와 노조 파괴 흐름이 있다”며 “(화물연대) 투쟁은 전체 운송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투쟁”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조직적 연대를 통해 화물연대를 돕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이미 민주노총은 자체적으로 하반기 투쟁의 강도를 높이겠다고 예고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정책이 실종됐다”고 반정부 투쟁 기조를 재차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9월 전국동시다발결의대회, 11월 총궐기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11월 대회에는 10만 명 참여를 목표로 했다. 이 인원은 7월에 열린 전국노동자대회도 5만여 명이 모였다는 점을 고려했다. 11월 집회에 10만 명이 모인다면 민주노총 역대 최대 집회 인원이다. 공공 부문 노동계도 들썩이고 있다. 이날 양대 노총 공공 부문 노조는 정부의 민영화와 구조 조정 방침을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을 예고했다. 정부는 노사 갈등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노동계에서는 이 입장을 노동권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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