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수가 여태 우승이 없었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선수가 있다. 한진선(25·카카오VX)도 그런 선수 중 한 명이다. 173㎝의 큰 키와 균형 잡힌 스윙으로 리더 보드 윗줄에 자주 등장하는데 우승은 없었다. 우승을 향한 ‘빌드업'은 좋은데 중요한 순간에 ‘빵’하는 샷이나 퍼트가 나오지 않았다. 201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후 톱 5 횟수만 열 번. 그중 두 번은 준우승이다. 상금 랭킹 37위인 5년 차 시즌도 그냥 무난하게만 흘러가나 싶었는데 ‘빵’하고 큰 것 한 방이 터졌다. 21일 강원 정선의 하이원CC(파72)에서 끝난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에서다.
단독 선두 안선주에 3타 뒤진 공동 2위로 4라운드에 나선 한진선은 버디 5개와 보기 1개로 4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 합계 11언더파로 9언더파 공동 2위 최예림, 유해란에 2타 앞선 우승. 131번째 출전 대회에서 3타 열세를 뒤집고 데뷔 첫 승에 성공했다. 상금은 1억 4400만 원.
2018년 최혜진에 이어 신인상 포인트 2위에 오른 한진선은 어릴 적 사격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사격 입문 석 달 만에 전국 대회 2위를 차지했다. 골프 입문은 중2 때로 조금 늦었다.
이날 한진선의 플레이는 파3 홀을 타깃 삼은 스나이퍼 같았다. 4개의 파3 중 3개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승기를 잡았다.
8번 홀(파3) 티샷을 톡 치면 들어갈 탭인 버디 거리에 보내면서 한진선은 같은 챔피언 조의 안선주, 최예림과 8언더파 공동 선두로 전반 9홀을 마쳤다. 이후 최예림이 11번 홀(파5) 버디로 먼저 한 발 달아났지만 한진선은 13번 홀(파4) 버디로 공동 선두를 되찾았다.
승부처는 14번 홀(파3). 안선주와 최예림이 모두 먼 거리 버디 퍼트를 못 넣은 뒤 한진선은 8m 남짓한 버디를 넣어버렸다. 퍼터를 떠난 공이 미세한 오른쪽 경사를 타고 정확히 홀 속으로 숨었다. 최예림에 1타 앞선 10언더파 단독 선두. 16번 홀(파3) 버디 퍼트가 너무 강해 부담스러운 파 퍼트를 남겼지만 한진선은 이를 놓치지 않아 단독 1위를 꼭 붙잡았다. 17번 홀(파4)에서 최예림이 버디를 잡고 공동 선두로 올라가 또 부담스러운 상황을 맞았지만 한진선은 3m 가까운 버디를 넣고 다시 달아났다.
한진선은 스크린골프와 골프장 부킹 사업을 주로 하는 카카오VX의 유일한 후원 선수이기도 하다. 카카오VX는 2016년 골프 유망주 지원을 위해 창단한 골프단 ‘팀 57’을 통해 한진선을 발굴한 이후 쭉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후 한진선은 “그동안 챔피언 조 경험이 꽤 많았는데 어떻게 플레이 해야 우승까지 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한 타, 한 타 신중하게 플레이 했다”며 “초반에 보기로 출발했지만 2·3라운드 초반에는 더블 보기로 시작한 뒤 극복한 터라 그 기억으로 ‘나는 할 수 있지’ 생각하며 편안하게 경기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국내 투어를 빛내는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뿐”이라고도 했다.
일본 투어 28승을 자랑하는 안선주는 3타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13년 만의 KLPGA 투어 통산 8승을 놓쳤다. 보기만 5개를 범해 5언더파 공동 8위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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