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경제신문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위치한 본사 대회의실에서 90여분간 단독 인터뷰를 했습니다. 김 회장이 단순히 책 출판에 대한 소감이나 투자자들에 보내는 연례 서한에 관한 설명 등을 위해 인터뷰를 한 적은 있지만 동북아 최대의 사모펀드로 성장한 MBK파트너스의 설립과 투자 철학, 향후 계획은 물론 일과 가족, 개인사 등을 통틀어 얘기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실제 그는 외신 등에서 ‘은둔의 경영인’으로 불렸고, 대외적으로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났습니다. 김 회장의 ‘조용한 행보’ 를 일부 사모펀드 최고경영자(CEO)들이 롤 모델로 삼을 정도입니다. 김 회장과 인터뷰의 주요 내용을 지난 16일 대부분 보도했습니다만 지면 사정상 싣지 못했던 부분을 ‘못다한 이야기’로 풀어볼까 합니다.
“경제 성장보다는 질까지 포함한 경제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경기 침체기가 오히려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지론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철학적으로 얘기해 보자면 왜 경기 호황, 즉 성장에 연연해야 하느냐’고 반문 했습니다. 그는 “경제 성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고 너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만 베네핏(혜택)으로 본다” 면서 “(경제는) 베네핏과 코스트까지 다 봐야 한다. 성장은 혜택으로 보더라도 소득 양극화나 환경 문제가 비용으로 남는데 다들 너무 성장만 고집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회장은 미국 생태경제학자인 허먼 데일리(Herman Daly)의 경제 발전론을 언급하면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허먼 데일리는 성장이 항상 좋다는 통념에 도전해온 진보적 경제학자입니다. 허먼은 인간이 양적 성장에 몰두하면서 기후 위기나 식량, 자원 문제를 낳았다고 주장해 왔죠. 심지어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말조차 덜 바람직한 것(자원 낭비)을 줄이는 대신 더 많은 것(성장)을 여전히 원하기 때문에 성장 지상주의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다만 그는 어떠한 번영도 추구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생태주의보다는 기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도 충분한 수준의 부를 오랫동안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회장은 자신이 중시하는 경제 발전의 예시를 놓고 “20년 전에는 컴퓨터가 지금보다 훨씬 컸지만 지금은 칩이 작아지면서 훨씬 작은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도 컴퓨팅 파워는 개선됐는데 그런 사례가 대표적으로 ‘발전’의 개념에 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사모 투자 업계가 항상 기업의 덩치를 키우는데 주력하며 추후 더 비싼 가격에 되파는 것에 주목하고 있고, 최근에는 벤처투자업계 역시 이를 극대화하는 데 몰두하는 것에 대한 반론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김 회장은 최근 세계 3대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던 이규성 대표, 지난해 물러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조시 해리스(Josh Harris) 공동 대표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동문 수학한 사이입니다. 극단적인 실적주의를 근거로 내부 경쟁이 치열한 사모펀드 업계를 회한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일까요.
김 회장이 외부 노출을 꺼리고 사모펀드 특성상 수익을 가장 앞에 놓을 수 밖에 없다보니 그를 ‘냉혈한’ 이나 ‘돈만 쫒는 투자가’로 보는 외부 시선이 적지 않고,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보다는 미국인에 가깝지 않느냐’는 오해도 받지만 이번에 만난 그는 소탈하면서도 유머를 즐기는 대한민국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공부 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다”는 김 회장의 말에 최근 매물로 나온 미국 프로야구단인 ‘워싱턴 내셔널스 인수를 검토한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라고 잽싸게 물었습니다. 그는 “내 무덤을 내가 팠구만” 이라고 웃으면서 “저야 본업이 투자고 야구는 사랑하고 점점점” 이라며 넘어가더군요. 김 회장의 한 측근은 “야구를 워낙 좋아하는데 진짜 좋아하는 팀은 따로 있어서…” 라고 알쏭달쏭하게 거들었습니다.
김 회장은 또 장남이 최근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데 대해 만족해 하는 듯 했습니다. “저도 그림을 좋아하는 데 아내가 미대 출신입니다. 큰 아들이 아버지 뜻을 잘못 알았는지 처음에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x고생을 했어요. 몇 달 안돼 그만두고 미술에 전념하니 아내가 너무 좋아하더군요” 라며 웃었습니다. 김 회장의 차남은 미국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시카고대에서 공부 중이지만 그는 단호하게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김 회장이 인터뷰에서 밝힌 “‘아시아식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은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 전 총리의 며느리인 호칭 테마섹 CEO가 불어 넣은 것이라고 하던데요. 그는 국내에서 또 다른 멘토로 이헌재 전 경제 부총리를 꼽았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월 정부가 최초로 4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을 발행할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헌재 전 부총리는 금융당국의 수장으로 달러 확보와 기업 구조조정 등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김 회장은 발행 주관사였던 살로만 홍콩 법인의 최고운영책임자였죠.
그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총대를 메고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등이 당시 외평채 발행을 정부에서 실무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면서 “이 전 부총리의 비전과 의지가 없었으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회장은 “외평채 발행을 맡으며 알게 된 이 전 부총리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며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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