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올해 초부터 판매량이 폭증한 감기약을 두고 제약사들이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바로 '사용량-약가연동제' 때문이다. 판매량이 예상보다 많을 경우 약가가 깎이면서 오히려 장기적인 매출은 줄어드는 상황을 제약사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대응책으로 감기약 등 일부 품목에 대해 사용량-약가연동제 적용 완화를 내놓으면서 장기간 이어온 감기약 품절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28일 상반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의 감기약 관련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 모두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치료제를 해열진통제, 진해거담제 등 기존 감기약으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원제약(003220) ‘코대원F/S’의 매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 대비 146.2% 증가한 229억 원을 기록해 지난해 전체 매출 199억 원을 반기 만에 훌쩍 넘어섰다. 동아제약의 감기약 ‘판피린’은 올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8.6% 늘어난 127억 원을 기록했다. 유한양행(000100)의 ‘코푸시럽’과 ‘코푸정’은 올해 2분기에 매출이 전년 동비보다 154.2% 늘어난 73억 원에 달했다. 보령(003850)의 진해거담제 ‘용각산’도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42% 늘어난 36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호실적에도 제약사들은 걱정이 앞선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전문의약품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많을수록 약가를 깎는 사용량-약가연동제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용량-약가연동제는 제약업체가 전년보다 공단에 청구하는 금액이 60% 이상 늘어나는 등 많이 팔린 의약품에 대해 건보 적용 약값을 인하해 재정을 확충하는 제도다.
즉, 올해 증가한 판매량을 감안해 해당 의약품의 약가를 낮추면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이 악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특수를 맞아 약값을 깎았다가 추후에 다시 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한정된 감기약 생산 능력을 사용량-약가연동제가 적용되지 않는 일반의약품에 비중을 크게 두거나 추가적인 증산은 단행하지 않아 감기약 수급 부족 사태가 쉽게 해소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의약품 판매 현황을 바탕으로 한 사용량-약가 연동 협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52개 제품군, 172개 품목에 대해 가격 인하를 결정하고 연간 447억 원의 건보재정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재정 절감액 447억 원은 전년보다 67% 늘어난 것으로 2006년 사용량-약가 연동제가 도입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대응해 지난 12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수급 불균형이 우려되는 약품은 사용량 증가 시 가격을 인하하는 약가 연동제 적용을 완화해 제조사들이 망설이지 않고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사용량-약가연동제 완화 방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앞서 지난달 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코로나19에 처방되는 해열진통제, 진해거담제, 위장약 등을 약가연동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건의서를 보건당국에 제출한 바 있다. 사용량-약가 지침 제10 조에 따르면 사용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감염병 대비 비축 약제 또는 감염병 치료에 사용되는 약제는 재정 등을 고려해 참고 가격을 보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26일 건보공단은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포함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감기약의 사용량-약가연동제 완화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대상 의약품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5개 품목, 이부프로펜 성분 2개 품목, 복합제 3개 품목 등 10개 품목이다.
문제는 업계의 건의 사항보다 품목이 적고 기간도 넓지 않다는 데 있다. 협상 대상인 10개 품목 외에도 코로나19 치료에 많이 쓰인 진해거담제, 항히스타민제, 소화제 등은 논의 대상에서 빠졌다. 더불어 올해 2~8월로 처방 기한을 한정해 지난해 말부터 급증한 청구액은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상병 코드로 처방된 이력이 있는 모든 의약품을 대상으로 사용량-약가연동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이정도 수준으로 감기약 생산량을 늘리는 유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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