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행위를 감시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법률이나 시행령이 아닌 ‘심사 지침(가이드라인)’에서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 과도한 권한을 휘두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정위는 사익편취 혐의로 대한항공(003490)을 제재한 사건에서도 최근 패소해 심사 지침 개정을 앞두고 있다.
29일 재계 등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사익편취) 규제 개선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최근 공정위에 제출했다. 공정위가 사익편취 심사 지침에서 법률·시행령보다 더 엄격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해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 의견서의 핵심이다. 통상 법률·시행령에서 위임 받은 사항을 구체화하는 고시·지침 등 행정규칙이 더 큰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경총은 특히 사익편취 심사 지침에서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하는 기준이 법령보다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서는 기업이 ‘합리적 고려’를 했거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를 했을 경우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했으나 심사 지침은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도록 했다. ‘경쟁 입찰을 거친 경우 합리적 고려 및 비교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는 심사 지침 규정도 사실상 입찰 방식을 강제해 법령의 범위를 넘어서는 규제로 해석될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제외되는 기준도 심사 지침에서 강화됐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효율성 증대 효과가 명백한 거래’를 규제 적용 제외 대상으로 규정했으나 심사 지침은 ‘효율성 증대 효과가 객관적으로 명백해 그와 같은 절차를 거치는 것 자체가 비효율을 유발하는 경우’로 엄격하게 해석했다. 시행령에서 예외 대상으로 제시한 ‘보완성이 요구되는 거래’ ‘긴급성이 요구되는 거래’ 역시 심사 지침에서 더 강화된 기준을 요구한다는 것이 경총의 시각이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을 사익편취로 제재한 사건의 패소가 최근 확정된 점도 공정위가 사익편취 심사 지침을 개선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이 됐다. 공정위는 2016년 한진(002320)그룹의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 소유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유니컨버스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고 판단하고 3개 회사에 과징금 총 14억 3000만 원을 부과했다. 대한항공이 이에 반발해 제기한 시정 명령 및 과징금 취소 행정소송에서 공정위는 전부 패소했다.
공정위가 내부 거래를 통해 한진 총수 일가에 귀속된 이익의 ‘부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 패소의 주된 요인이었다. 대법원은 사익편취 사건에서 위법성이 성립되려면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의 경위 및 당시 상황 △거래의 규모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 등을 함께 고려해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 또는 심화되는 것을 공정위가 입증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공정위는 사익편취 심사 지침 개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등 규제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효율성 증대 등 ‘예외 인정 요건’과 이익의 부당성 판단 기준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다만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심사 지침을 구체화한다는 것이 규제 완화로 읽힐 수도 있지만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는 식으로 간다면 결국 기업의 부담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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