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내놓은 세수 전망을 한 꺼풀 벗겨보면 내년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당국의 암울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부가 예상한 내년 국세 수입 규모는 400조 5000억 원이다. 올해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세수 397조 1000억 원에 견줘보면 증가율이 1%가 채 안 된다. 세수가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것은 내년 경제 상황이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세수 증가율이 경상성장률을 크게 밑도는 점은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경상성장률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일종의 물가지수인 GDP 디플레이터 값을 더한 수치로 세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지표다. 통상 경상성장률과 세수 증가율은 엇비슷한 흐름을 보이지만 정부가 예상한 내년 경상성장률은 4.5%로 두 지표 간 차이가 크다. 우리 경제가 겉으로는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요 기업의 실적이나 부동산 경기 등 실물 경기는 크게 꺾일 수 있다는 뜻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양도소득세 등이 당초 예상보다 10조 원 넘게 걷힐 정도로 부동산 경기가 전체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면서 “내년에 우리 경제가 외형적으로 성장하더라도 부동산이나 주가 등 자산 시장 경기가 전만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세수 추계 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공개한 세수 전망을 세목별로 뜯어보면 부동산 경기에 영향 받는 양도소득세는 내년 29조 7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1조 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시황이 꺾이면서 매매 등 전국 주택 소비자 심리는 하강 국면으로 전환했는데 정부는 이 같은 기조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주택 매매 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월 105.8에서 7월 95.2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 경기 또한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법인세 수입은 105조 10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1조 1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직전 해 법인세 증가분이 30조 원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도드라진다. 반도체 시황 악화 등의 여파다. 증권거래세 수입도 내년 5조 원으로 2조 10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관련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세·법인세 등 세제 개편 등을 반영해 가계와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그 돈으로 소비하고 투자하라는 뜻으로 봐 달라”며 “민간 주도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특히 이날 함께 내놓은 중기재정운용계획을 통해 국세 증가율이 2024년이면 4.6%로 올라서고 이후에도 4.9%, 4.7%로 평년 수준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후년부터는 우리 경제가 정상 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내외 변동성이 큰 터라 세입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반도체 경기나 금리 추이처럼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다”면서 “세입 여건을 낙관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세수 증가율이 정부 예상치를 밑돌면 재정 운용 부담도 커진다. 정부는 총지출 규모를 2026년까지 매년 4.6%가량 늘릴 계획을 세워뒀는데 세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가채무가 올해 1068조 8000억 원(2차 추경 기준)에서 2026년 1343조 9000억 원으로 25.7%(275조 1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은 “현 정부가 균형 재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경기가 꺾이면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면서 “(부채가 늘 수 있지만) 세수가 예상보다 줄더라도 당초 계획한 지출 규모를 줄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올해 국세 수입이 397조 1000억 원으로 5월 2차 추가경정예산 때 밝힌 전망치(396조 6000억 원)보다 4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종합소득세가 2조 7000억 원, 법인세와 부가세가 각 1조 1000억 원, 1조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는 각 3조 5000억 원, 1조 8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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