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빠른 속도로 회복한 데다 K드라마·K팝 등 ‘한류’로 불리는 소프트 파워의 강국입니다. 그 소프트 파워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지금 전 세계 미술계가 ‘한류의 나라’ 한국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 서울과 키아프(Kiaf) 서울 개최에 맞춰 서울 청담동 분더샵에서 특별전을 연 글로벌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프랑시스 벨린(사진) 아시아지역 총괄사장은 지난달 3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미술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를 “당연한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크리스티는 올해 상반기에만 41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조 1000억 원의 매출을 거뒀고 그중 경매 판매 총액만 약 4조 3000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한 수치로 지난 7년 중 최고 실적이다. 벨린 사장은 “상반기 구매 고객 중 30%가 크리스티의 신규 고객이며 그중 34%가 밀레니얼이었다”면서 “지난해 밀레니얼 신규 고객이 31%였으니 꾸준한 증가세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영 앤드 리치’ 컬렉터의 비중 증가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해 벨린 사장은 “프리즈 서울 개최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이곳 한국은 가장 역동적인 미술 시장이며 기간에 따라 매출 비중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매우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미술 생태계 구축이 중요한데 한국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미술 기관과 컬렉터, 작가와 갤러리, 경매회사 등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고 지금 아주 유기적인 작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벨린 사장은 그러나 서울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로 불리는 홍콩의 위상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홍콩이 정치적 상황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를 겪었지만 회복세로 국면 전환하는 중”이라며 “크리스티는 2024년 개관을 목표로 4645㎡(약 1400평) 부지에 건축가 자하 하디드 사무실의 설계로 아시아 최초의 전용 경매장 건물을 신축해 연중무휴의 전시와 함께 경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의 위기를 기회 삼아 공간을 확장하는 것은 내년 이전을 계획 중인 필립스 경매도 마찬가지다. 그는 “팬데믹 이후 크리스티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어디서든 작품 거래를 가능하게 했다”면서 “홍콩이 지리적 한계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벨린 사장은 한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 미술의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그는 “크리스티 뉴욕은 최고 수준의 한국 고미술을 구매할 수 있는 채널로 유명하다. 김환기의 ‘우주’가 142억 원에 거래된 곳 또한 크리스티였다”고 강조했다. 벨린 사장은 “김환기 작가뿐 아니라 최근에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 프랑스에서 활동한 여성 작가 이성자를 비롯해 심문섭·우국원 등 한국 미술가의 경매 최고가 기록이 크리스티를 통해 수립됐고, 세계에 알려졌다”고 말했다.
한편 크리스티는 2일 특별전 ‘플레시 앤드 소울(Flesh and Soul): 베이컨, 게니’를 언론에 공개했다. 1억 달러, 약 1300억 원에 달하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를 비롯한 총 16점의 작품은 작품가 총액이 약 5800억 원에 달한다. 작가의 대표작 중에서도 수작인 작품들로만 엄선돼 이번 키아프·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기획된 다양한 전시 중 가장 수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시에 대해 벨린 사장은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아트 위크’가 진행되는 서울을 위해 크리스티가 마련한 아주 소중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