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이라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기업가정신을 키워야 합니다. 산학연 등 국가적으로 기술 개발 못지 않게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인본주의를 확산해야 하고요. 국가적으로 실수와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을 만드는 과제도 같은 이치입니다.”
산학연정 전문가들은 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지수면 K-기업가정신센터에서 열린 ‘과학기술 K-기업가정신 토크콘서트’ 1부(국가적인 K기업가정신 고취의 길)에서 이렇게 입을 모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개척 정신을 실천에 옮기되 결국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인본주의, 나아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는 서울경제가 1박2일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등과 경남 진주시·산청군·의령군에서 연 ‘2022 과학기술 K-기업가정신 캠프’의 일환으로 열렸다. 전국 산학연 연구자와 최고경영자(CEO), 벤처 투자자 등 100여 명이 이병철·구인회·허만정 등 대한민국 1세대 기업인의 생가를 탐방한 뒤 참여했다.
고광본 서울경제 선임기자(부국장)의 사회로 백가쟁명식으로 열린 이날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인본주의에 주목했다. 우선 김무환 포항공대(포스텍) 총장은 “학교나 연구원도 그렇지만 벤처 기업을 보면 기술이 우수한 게 많지만 어떻게 쓰이고 도움을 줄지 더 고민해야 한다”며 “세계로 나가려면 그들의 습관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고3 때 신뢰를 잃지 않고 어떻게 벤처를 정리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했다. 김 총장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내년 3월 의과학대학원을 개설하고 의학전문대학원 신설을 추진 중”이라며 “이 분야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중진공 혁신성장위원장)은 “기업가정신은 다같이 잘 살고 행복해지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됐다”며 “산학연정이 정말로 힘을 합쳐야 퍼펙트스톰을 극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산학연의 지식재산(IP) 전략을 재정비해야 혁신의 가치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 투자가인 김용건 블루포인트 부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성공한 창업가가 후배에게 투자하는 게 관행”이라며 “황철주 회장처럼 창업가들이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국가적으로 도전과 모험이 가능한 기업가정신 생태계 조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내정자는 “미국에서는 창업가들이 한두 번 실패하고 30대 중후반은 돼야 기업을 일으키는 게 일반적”이라며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복철 NST 이사장은 “정부에서 연구자들이 도전하고 실패해도 용인되는 토양을 만드는 혁신을 꾀해야 한다”며 “기업이 절박하게 경제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연구 현장도 치열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은 “연구원에서 기업가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게 정말 중요하다”며 “좋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에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줘야 한다”고 했다.
유석환 로킷헬스케어 회장은 “창업이든 연구든 퇴로가 없다는 각오로 임하되 산만할 정도로 호기심을 갖고 열정을 태워야 한다”며 “연구할 때 실수를 많이 하지만 결국 정주영 회장이 말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처럼 해낸다”고 소개했다.
지역 소멸 우려 시대에 기업가정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은 “지방 소멸 우려는 기업가정신을 통해서만 돌파할 수 있다”며 “기업가정신은 결국 ‘돈 버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지인데 돈 버는 미들테크(중간 수준 기술) 개발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교육재정교부금제도로 인해 초중고는 투자가 넘치는데 대학은 크게 부족하다”며 지방대의 애로를 호소하기도 했다.
연구소와 대학의 기술사업화 활성화 방안도 나왔다.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윤석열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는 “연구소 기술의 경우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며 “이스라엘 히브리대의 기술이전조직(TLO)인 ‘이숨’은 영업 사원처럼 기술을 팔고 기술 수요도 파악해 연구계와 산업 현장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봤다”며 연구원과 대학의 TLO 강화를 주문했다. 유 회장은 “시장이 거절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술을 적기에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역발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총장은 “포스텍에서 기술이전료 수입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올해 40억~50억 원 수준일 것”이라며 “어떤 기술이 얼마를 벌지는 알 수 없는데 그것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대학에서 기술이전을 하면 30~50%는 대학이 갖고 나머지는 연구자 소득에 합산 과세가 돼 실제 2000만~3000만 원이 입금될 것”이라며 대학과 출연연 연구자에 대한 사기진작책을 강조했다.
이날 청중들도 집단지성을 발휘해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했다. 장성환 한국기계연구원 박사는 “출연연 등에서 기술이전과 창업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여러 곳에 기술이전은 되는데 한곳에 집중적으로 주는 것은 잘 안되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요청했다. 이에 황 회장도 “기술이전하면 독점권을 줘야 효과적이지 여러 곳에 공유시키면 기업은 망한다”고 거들었다. 김세중 중진공 벤처융합처장은 “출연연과 대학에 좋은 기술이 많은데 백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조재희 경상국립대 연구원은 “기업가정신에 인본주의가 중요하다”고 했고 방성식 경상국립대 교수 역시 “도전정신·혁신성·진취성을 함께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포스텍 학생은 “실상 도전을 주저했는데 이번 모임을 통해 나를 믿고 핑계를 대지 않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경남 진주·산청·의령=고광본 선임기자, 김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