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퍼펙트스톰(복합 위기)이 몰아닥치고 있는데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면 산학연정이 시급히 상생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혁신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고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대혁신해야 합니다.”
산학연정 전문가들은 1일 오후 경남 진주 K-기업가정신센터에서 열린 ‘과학기술 K-기업가정신 토크콘서트’에서 “지금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선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미중 패권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을 들며 “과학기술은 이제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죽고 사는 문제가 됐다”며 “공공과 민간의 ‘고 투게더(Go Together)’ 정신을 드높여야 생존할 수 있고 주요 5개국(G5) 도약의 토대도 닦을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10대 국가전략기술 전략을 다듬고 있고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묶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지방자치단체·대학 간 협력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김무환 포항공대(POSTECH) 총장은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했던 것처럼 산학연이 각자 가진 ‘금(金)’을 내놓고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그는 “벤처·스타트업 등 산업 분야나 연구개발(R&D) 현장이나 정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흘러가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뒤에서 지원하고 민간 자본의 투자가 늘어나도록 체질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가 출연연·대학·기업에 지원하는 R&D 예산이 30조 원이나 되지만 실상 미국의 글로벌 대학 몇 개의 예산 규모라는 점에서 민간 투자가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는 “메타버스와 인공지능(AI), 블록체인을 비롯해 유행을 좇는 R&D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 어디에서나 좋다는 것은 다 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날 G5 강국의 토대를 닦으려면 혁신의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중진공 혁신성장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도국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기술의 혁신과 온전한 산학연 협력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R&D와 혁신에 투자하는 게 부동산 값보다 못한 현실이 지속됐다”며 “기술 혁신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가 돼야 희망이 있다”고 역설했다.
유석환 로킷헬스케어 회장은 “세계적으로 주식 상장이 가장 어려운 나라가 한국”이라며 “미국과 중국 등에서는 벤처기업이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하면 상장이 가능하고 재정적 지원도 원활히 이뤄지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밝혔다. 바이오생명과학 분야의 경우 투자시장도 얼어붙었는데 기업공개(IPO)마저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용건 블루포인트 부대표는 “앞으로 벤처·스타트업에서도 옥석이 가려지겠지만 우리나라가 나아가려면 기술 스타트업 활성화가 가장 큰 화두”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스타트업이 동반자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은 “지역의 뿌리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극심한 정체에 빠져 있었다”며 “지역 기업들이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를 따라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재료연구원은 초고온·극저온 ‘극한기술’을 통해 지역의 터빈, 모터, 차세대 엔진, 군사기술 혁신을 뒷받침하겠다며 최근 3100억 원 규모의 예비타당성 검토가 통과됐다고 소개했다. 고 대표도 “전국에 산업단지 1000여개가 있는데 인수위 활동 당시 보니 현황조차 정리된 게 없었다”며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제조업 등 전통 산업의 생태계도 잘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출연연과 대학이 지역 혁신의 허브가 되기 위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총장은 “지역별 최저임금 차별화 등 고용 시장의 유연성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날 교육 혁신에 대한 목소리도 컸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내정자는 “경제위기와 인구 급감 등 퍼펙트스톰이 닥치는데 각자 과학기술 주특기를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복수전공·부전공 활성화 등 융·복합 교육도 강화하고 100여년 전 확립된 4년 8학기 대학 모델도 유연하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총장은 “고교까지 실수를 안 하는 것만 반복해서 배우는데 어떻게 창의적 인재로 바꿔놓을 수 있느냐”고 한탄했다.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은 “인구 감소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는데 대학에서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신기술과 제조업 모두 인력이 모자란데 해외 인력 활용 등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천에 항공우주청이 만들어지면 항공우주 산업의 메카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고 대표도 “군산 군장대(2년제)가 방글라데시 학생들을 입학시켜 산업 교육을 시킨 뒤 취업을 돕는데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위기라고 느끼지 못할 때가 진짜 위기이다. 지금처럼 글로벌 밸류체인이 붕괴된 진짜 위기 상황에서는 혁신하는 만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며 각 분야에서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권 총장도 “미국이 대공황 때 뉴딜 정책을 했듯 위기 이후를 대비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청중석에서도 활발히 토론에 참여했다. 권순용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학협력단장은 “사실상 수도권 1극 체제에서 지방의 대학과 출연연이 기술 혁신을 선도해 벤처·스타트업과 함께 곧바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틀을 짜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종환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 부회장은 “기술 패권 시대,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노동·공공·금융·기업·교육·연금 시장을 혁명적으로 리셋하지 않으면 G5 강국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