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비가 폭우 수준으로 바뀌었다. 서요섭(26·DB손해보험)이 9번 홀(파4) 두 번째 샷을 앞둔 시점이었다. 6타 차 선두기는 해도 남은 홀이 많았다. 비바람이 강해지면 또 어느 쪽으로 경기 흐름이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무엇보다 눈앞의 샷이 중요했다. 141야드를 남기고 친 세컨드 샷. 강한 빗줄기를 뚫고 핀 방향으로 날아간 공은 핀을 훌쩍 넘긴 그린에 떨어졌다. 이 공은 그러나 백스핀과 내리막 경사의 영향으로 4~5m나 쭉 내려가더니 핀 1m 안쪽에 붙었다. 우산을 쓴 갤러리들은 보기 드문 묘기에 탄성을 내질렀다.
‘슈퍼맨’ 서요섭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를 마음껏 주무르고 있다. 4일 경기 안산 대부도의 아일랜드CC(파72)에서 끝난 LX 챔피언십에서 서요섭은 4라운드 합계 22언더파 266타로 우승했다. 나흘 간 이글 1개와 버디 22개를 삼키는 동안 보기는 2개뿐이었다. 지난주 바디프랜드 군산CC 오픈 연장 우승에 이은 2주 연속 우승. 2개 대회 연속 우승은 2020년 김한별 이후 2년 만의 기록이다. 투어 통산 5승째이고 이번 시즌 2승은 김비오에 이어 두 번째다.
3라운드 뒤 “우승 스코어는 20·21언더파 정도일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예상도 넘어버렸다. 17언더파 2위 김태호와 5타 차. 첫날 9언더파를 쳐 1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서고는 내내 단독 선두를 놓치지 않은 완벽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다. 상금 1억 2000만 원을 거머쥔 서요섭은 상금 랭킹 15위에서 6위(약 3억 1700만 원)로 껑충 뛰었다. 최우수선수(MVP)를 가리는 제네시스 포인트 부문은 4위다.
2위 그룹과 8타 차로 4라운드를 출발한 서요섭은 버디 5개와 보기 1개로 4타를 줄였다. 김태호가 버디만 8개로 추격전에 나섰지만 서요섭은 흔들리지 않았다. 드라이버 샷이 오른쪽으로 빗나가 카트 도로마저 넘어간 10번 홀(파4)이 위기였다. 세 번째 샷 만에 겨우 그린에 올려 타수를 잃을 상황이었다. 서요섭은 그러나 4.5m 내리막 파 퍼트를 넣어 위기를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는 16번 홀(파4) 5.5m 버디로 22언더파 고지를 밟았다.
1번 홀부터 331야드의 초장타를 날린 서요섭은 14번 홀부터는 우드나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티샷 하는 안전한 공략으로 전환했다. 그래도 260야드가 훌쩍 넘게 보냈다. 걱정했던 비바람은 중반 이후 잔잔해지면서 변수마저 사라진 셈이 됐다. 공동 2위로 출발한 정한밀과 차강호는 나란히 1타를 줄이는 데 그쳐 11언더파 공동 4위로 마쳤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등산을 즐기는 서요섭은 투어를 대표하는 ‘몸짱’이다. 미국의 근육질 골퍼인 ‘슈퍼맨’ 브룩스 켑카를 연상케 해 ‘한국의 켑카’ ‘슈퍼맨’으로 불린다. 서요섭은 “한 번 우승도 어려운데 2주 연속이라니 믿기지 않는다”며 “다음 대회는 마침 디펜딩 챔피언으로 나가는 것이라 설렌다. 하지만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지금의 감만 살리는 쪽으로 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남자 골프의 확실한 스타로 떠오른 절정의 서요섭은 8일 일본에서 개막하는 신한동해오픈에서 3주 연속 우승이자 대회 2연패에 도전한다. 3연승은 22년 묵은 대기록이다. 2000년 최광수가 마지막이다. 서요섭은 “일본에서 대여섯 번 대회에 나간 경험이 있다. 코스와 음식이 저와 잘 맞아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상금과 제네시스 포인트 부문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는 김민규는 지난달 교통사고를 당한 뒤 회복 중이다.
한편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후지산케이 클래식에서는 박상현(39)이 연장 끝에 준우승했다. 2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에 나선 박상현은 타수를 줄이지 못해 11언더파로 오니시 가이토(일본)와 동타로 마쳤고 연장에서 버디를 내줘 패했다. 2위 상금은 1100만 엔(약 1억 600만 원). 박상현은 KPGA 투어 11승, JGTO 2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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