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에게 탈무드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남명 조식 선생 등 선비 정신이 있죠. 경남 진주 승산마을 등 경상우도(서부 경남)에서 성공한 재벌 기업들이 연이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최구식 한국선비문화연구원장은 2일 경남 산청 선비문화연구원에서 열린 ‘남명 사상으로 본 기업가정신 실천의 길’을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행사는 서울경제가 산학연 관계자 100여 명과 함께 경남 진주·의령·산청에서 진행한 ‘2020 과학기술 K-기업가정신 캠프’의 일환으로 열렸다.
고광본 서울경제 선임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전문가들은 지행합일을 강조하는 남명 사상이 도전과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과 맞닿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 원장은 “남명의 경의(敬義) 사상이 400여 년간 이어져오면서 유증(油烝)이 가득 차 있다가 근대 비즈니스가 도입되며 성냥을 그으니 대폭발한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남명 사상이 기업가정신으로 이어지며 서부 경남을 중심으로 이병철(삼성)·구인회(LG)·허만정(GS)·조홍제(효성) 등 1세대 기업인뿐 아니라 많은 중견·벤처기업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남명은 16세기 (인간의 본성을 밝히고자 하는)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 벌어지던 때 먹고사는 문제, 실사구시에 관심을 기울였다”며 “왜구를 막기 위해 병법을 가르치며 대책을 물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임진왜란 때 50명 이상의 제자들이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것처럼 이제는 제자의 후손들이 기업을 일으켰다”고 했다.
정대율 경상국립대 교수는 “남명의 경의 사상은 통찰력을 강조한다”며 “미래를 보고 신시장을 발견할 수 있는 통찰력이 바로 기업가정신의 출발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목숨을 걸고 민생을 살피라고 임금에게 충고한 남명의 우국애민 정신과 임진왜란 때 제자들의 대규모 의병 투쟁이 바로 기업인의 사업보국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서부 경남 출신의 많은 기업인이 남명의 제자 그룹 후손인 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뿌리 없는 열매가 없듯이 남명 정신이 기업가정신의 원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남명을 영국의 아이작 뉴턴에 비유했다. 황 회장은 “뉴턴의 만유인력의법칙이 과학기술 발전과 1차 산업혁명의 촉매가 됐다”며 “뉴턴보다 140여 년 앞서 산 남명의 철학적 뿌리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술 패권 시대 최전선에서 경제 전쟁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가정신의 뿌리를 돌아보게 된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은 “남명은 학문을 실제 삶에서 실천한 참된 지식인의 표본”이라며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를 산업 현장에 잘 적용해 실생활에서 활용이 가능한 기술로 발전시키는 것이 남명 사상과 연결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남명의 제자가 된다는 마음으로 도전 정신, 헝그리 정신을 갖고 미래 신성장 동력을 찾는 게 남명 사상을 실천하는 길 아니겠느냐”고 의지를 보였다.
조용준 안다아시아벤처스 대표는 “지금도 남명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그 제자들이 의병을 일으켰던 정신을 살려 혁신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전기차·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의 확산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은 남명의 실천 정신이 기술 패권 시대 대학 등 산학연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UNIST는 교수 330여 명 가운데 20% 가까이 창업할 정도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지금 생각해보니 진주 출신인 초대 총장(조무제)이 바로 남명 사상의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명이 사상과 이론을 넘어 실천, 즉 지행합일을 강조한 것에 주목했다. 이 총장은 “기술 창업의 길을 봐도 먼저 이론을 담는 논문과 특허를 출원하고 이를 기반으로 창업한 뒤 투자 유치와 상업화에 나서는데, 곧 남명 사상과 닿아 있다”며 “최근 미국을 다녀왔는데 40여 개나 창업한 밥 랭어 MIT 교수는 ‘먼저 네이처·사이언스에 쓴 논문을 바탕으로 기술사업화하라’고 하더라. 이론과 사상에 기반을 두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복 티비허브 대표는 남명 사상을 이어받아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남명의 가르침을 곱씹다 보면 마치 기업 경영 현장에서 그의 사상을 실천하는 의병장이 된 기분”이라며 “기업은 매일 생존 전쟁의 연속인데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은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청중들도 활발히 토론에 참여했다.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은 “남명의 우국애민 정신과 제자들의 의병 투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리더의 도덕적 의무)’의 전형”이라며 “남명 사상과 기업가정신 간 연결 고리가 아직 부족한데 연구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김학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개회사와 청중석 토론을 통해 “남명 사상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기업 혁신 등으로 연결돼 감명을 받았다”며 “남명의 기업가정신을 이어받아 중소·벤처기업의 판로 개척과 글로벌 진출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남명 조식(1501~1572)=어려서는 서울에서 과거 공부를 하기도 했으나 마음을 바꿔 평생 벼슬을 사양했다. 처가가 있는 김해에서 제자를 양성하다 1551년 단성 현감으로 제수됐으나 거부하며 올린 상소가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1561년 산청으로 옮겨 후학 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밝게 성찰하고 실천하는 경의 사상을 펴고 병법을 가르쳐 정인홍·곽재우 등 제자들 가운데 50명 이상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