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 민간 기업의 액화천연가스(LNG) 비축을 강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제 LNG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만큼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뿐 아니라 민간 기업까지 동원해 LNG 공급난에 대비하자는 취지에서다. 대신 민간 업체에 제3자에 대한 도시가스 판매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12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중요 공급 기관에 대해 LNG 등 핵심 자원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위한 비축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여기에 급박한 자원안보 위기를 대비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시적으로 비축 및 비축 물량 증량 요구를 할 수 있다. 대신 수급 위기 시 자가 소비용 직수입자에게는 국내 제3자에 대한 예외적 도시가스 판매도 한시적으로 허용된다. 현재 민간 업체들의 LNG 직수입은 자가 소비용에 한해 허용되고 있다.
해당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민간 LNG 직도입 업체들은 LNG 비축 의무를 새로 지게 되는 대신 제3자에 대한 판매가 가능해진다. 현재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가스공사는 일평균 사용량의 9일분을 저장해야 하지만 민간 업자들에는 이러한 의무가 적용되지 않았다. 어차피 수입해봐야 자가 소비용으로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LNG는 기화 특성 때문에 장기 보관이 어렵다는 점도 자가 소비용으로만 써야 하는 민간 업체들에 비축 의무를 부과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LNG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비상시 활용 가능한 물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자 국회는 민간 기업의 비축 의무 부과 카드를 꺼내 들었다. LNG 가격을 가늠할 수 있는 동북아 천연가스현물가격(JKM)은 지난해 1월 열량 단위(MMbtu)당 8.17달러에서 이달 11일 53.9달러로 7배 가까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민간 업체들이 일평균 사용량의 7일분가량을 비축하면 비상시 활용 가능한 국내 LNG 비축량이 현재의 2배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민간 발전 업계는 비축 의무 부과에 반발하고 있다. 우선 가스 저장 시설을 짓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리고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민간 발전사 관계자는 “에너지 수급 위기라는 점에는 동의하나 당장 비축 의무를 부과해버리면 갑자기 가스 저장 시설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비축 의무의 대가로 제3자 판매를 허용해준다고 하지만 제약이 적지 않다. 한시적 판매 허용의 기준인 ‘위기’를 진단·평가하는 주체가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인 자원안보위원회인 만큼 정부 뜻대로 제3자 판매가 결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강남훈 민간LNG산업협회 부회장은 “지금도 가스공사가 동절기 수급 위기 시 반강제적으로 민간 발전 업계의 LNG 물량을 대여해갔다”고 강조했다.
다만 에너지 위기가 해소되더라도 민간 직도입 LNG의 제3자 판매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시적 허용을 통해서도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 붐이 일어나는데 정부가 이를 역행해 규제를 되살리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사실상 비축 의무 부과와 제3자 판매 허용을 맞바꾸는 형태”라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종료되더라도 제3자 판매를 다시 규제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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