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부실 조사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던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본인을 수사하던 군 검사에게 부당한 압력을 넣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전 실장이 부실 조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계기였던 녹취록은 제보자의 ‘조작’으로 밝혀졌다. 특검은 또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고 ‘이 중사가 좀 이상하다’는 등 2차 가해 혐의를 받는 관계자들을 기소했다.
특검팀은 전 실장 등 공군 장교 5명과 군무원 1명, 전 부사관 1명 등 7명을 9일 불구속 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특검팀은 6월 5일부터 100일 동안 164명을 조사하고 18회의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수사 결과 △이 중사의 직속상관이던 제20전투비행단 대대장(이하 불구속 기소)과 중대장의 피해자 사망 전 2차 가해 △이 중사 사건을 송치받은 20비 군 검사의 직무 유기 △이 중사를 강제로 추행한 당시 선임 부사관의 허위 사실 명예훼손 등 범행이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
20비 대대장은 이 중사와 가해자가 분리돼 있다고 상부에 허위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또 가해자 등이 이 중사에 대한 회유·은폐를 시도한 것을 알면서도 징계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특검팀의 결론이다. 중대장은 이 중사가 새로 전입하려는 부대에 “이 중사가 좀 이상하다. 별것도 아닌 일로 고소하려 드니 조심하라”는 등 허위 소문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사 사건을 담당했던 군 검사는 2차 가해와 관련한 정황을 알았으면서도 관련된 수사 등을 진행하지 않고 휴가를 가야 한다며 이 중사 조사 일정을 미룬 혐의를 받는다. 해당 검사는 문제가 불거지자 이 중사가 먼저 조사를 미뤄 달라고 했다고 허위 보고했다. 이 중사는 당초 조사하기로 했던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밖에도 재판을 받고 있는 가해자 부사관은 “이 중사가 날 성추행 혐의로 거짓 고소했다”고 헛소문을 내는 등 이 중사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사가 사망한 후에도 공군본부 공보 담당 장교는 기자들에게 이 중사가 부부간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는 취지의 허위 사실을 전하는 등 여론 조작에도 적극적이었다는 게 수사 결론이다.
전 실장이 ‘부실 조사’를 했다는 의혹의 시작이 된 군인권센터의 ‘녹취록’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다. 특검이 지난해 11월 공개된 ‘군 검사들 대화 녹취록’을 음성 분석과 디지털 증거 분석 등으로 조사한 결과 공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가 녹음 장치와 음성 합성 프로그램으로 위조해 제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속 기소된 변호사는 법무관 근무 시절 본인에게 중징계를 내렸던 전 실장에 대해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이 같은 행각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전 실장은 자신이 수사를 받기 시작하자 군 검사에게 전화해 자신이 범행을 지시했다고 한 수사 자료는 사실이 아니라고 추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 실장은 “조작된 녹취로 억울하게 매도돼 피해를 당했는데 특검이 꿰맞추기식으로 기소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검은 “공범 개념의 조직적 은폐가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성폭력 피해자의 두려움과 고통을 외면하고 설 자리마저 주지 않는 군대 내 그릇된 문화와 낡은 관행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꽃다운 나이에 품었던 꿈을 채 펴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이 중사의 명복을 빌고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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