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와 ‘골퍼’. MZ세대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2018년 말쯤만 해도 MZ와 골퍼는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펄펄 끓는 젊음과 꼰대 이미지가 충만한 골프(또는 골퍼)가 어떻게 도킹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3년여가 지난 지금 MZ골퍼는 누구도 어색해 하지 않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인스타그램엔 초록 필드에서 싱그러운 젊음을 뽐내는 피드가 넘쳐 난다. 유통가의 주요 타깃이 MZ골퍼로 옮겨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골프장들은 MZ골퍼를 잡기 위해 일부러 포토존까지 만든다. 과거 시도 때도 없이 빈 스윙 동작을 취하는 중년들의 모습을 젊은이들은 꼴불견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2030세대도 그렇게 한다. 길모퉁이에서, 심지어 길을 가면서도. 말단 사원이 부장님과 서로의 빈 스윙을 봐주며 골프 고민을 나누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골프장 티타임 연결 플랫폼인 타이거GDS의 개발사 AGL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국내 골프장 이용객 중 2030은 전체 연령대의 16.8%에 이른다. 30대가 10.6%, 20대는 6.2%다. KT, BC카드와 공동으로 전국 주요 골프장의 2019~2021년 이용객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2019년 대비 2021년 20대 골퍼는 무려 52.4%가 늘어났다. 30대 골퍼 증가율은 40.3%. AGL은 “지난해 수도권의 한 대중 골프장은 2030 이용객 비중이 21.8%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2030 이용객이 95.2%나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여성 골퍼 비율이 33.5%(남성은 66.5%)인 것도 눈에 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20대 여성 골퍼들은 평균 16.3회 골프장을 이용했다. 2019년 조사 때의 1.3회와 비교해 12배 이상 뛰었다. 60세 이상 남성(11.1회)과 50대 남성(9.8회)의 골프장 이용 횟수와 견줘봐도 두드러진다.
20대 여성 등 MZ골퍼의 대거 유입으로 가장 빠르게 돌아가는 곳은 골프웨어 업계다. 라운드나 연습 때 제일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옷인 데다 골프기어(용품)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구매 주기가 빠르기 때문이다.
국내 골프웨어의 시장 규모가 올해 약 6조 3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14년 2조 8000억 원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 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골프웨어 시장은 2018년 4조 2000억 원에서 2020년 5조 1250억 원으로 커졌다. 골프복 라인이 없는 의류 브랜드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홍승완 CJ ENM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코로나19 이후 2030과 여성 골퍼가 대거 유입되면서 골프웨어를 명품처럼 소비하는 트렌드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골프웨어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56.3% 성장했는데 이중 2030 고객 매출 비중은 64.6%나 뛰었다.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2030 골프 매출도 50% 늘었다. 올 1~6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5%가 또 올랐다.
확 꽂힌 브랜드나 아이템에 돈을 아끼지 않는 플렉스 소비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합리적 가격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실속 소비다. 이마트의 올 2월 기준 2030 골프 부문 구매 비중이 20.1%로 2년 전 2월의 12.5%와 비교해 크게 늘어난 것이나 최근 6개월 간 2030 골프 구매 실적이 62.1% 증가했다는 이 회사 데이터도 실속 소비 인기를 증명한다. 한 브랜드에서 올 6월 내놓은 중저가 골프화는 6·7월 두 달 간 판매율이 전년 동기의 이전 모델 판매율과 비교해 1042%나 치솟기도 했다.
서울경제는 골프를 누구보다 흠뻑 즐기고 있다고 자부하는 다양한 MZ골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에게 골프는 어떤 의미일까.
◇골프는 성장의 기록이다
소셜미디어의 소통 매개는 텍스트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 옮겨왔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처럼 짧은 동영상으로 소통하는 트렌드에 골프 스윙 영상은 딱 들어맞는다. 어드레스부터 피니시, 공이 떨어질 때까지 3~5초면 끝나니 가볍게 보고 넘기기 좋다. MZ들은 ‘골린이’ 시절 연습 영상부터 필드에서 멋진 샷을 날리기까지 각 과정을 소셜미디어에 영상으로 차곡차곡 기록한다. ‘좋아요’와 응원 댓글에 힘을 얻고 또 남의 스윙 영상을 보며 반응을 남긴다.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는 한세희(31) 씨는 골프를 통해 소셜미디어의 세계에 입문한 케이스다. “골프를 배우기 전에는 인스타그램을 거의 안 했다. 가끔 일상을 공유하는 정도였다”는 한 씨는 “1년 전쯤 골프 시작하면서 레슨이나 연습 영상을 릴스로 열심히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발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도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팔로워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야근이 잦지만 1주일에 최소 두 번은 꼭 연습장을 찾고 필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나간다.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던 박미영(41) 씨는 꾸준히 올리던 골프 연습 영상이 대박이 나 아예 전업 유튜버로 나섰다. 박 씨는 “사람들이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멋지게 변한 몸에서 흐뭇함을 느끼듯 저는 조금씩 나아지는 골프 스윙을 보면서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골프는 데이터다
“저 여자 선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가 시속 105마일까지 나온대.” 예전 같으면 ‘그게 뭔 소리야’ 했겠지만 MZ들은 즉각 반응한다. “와, 그래서 그렇게 멀리 치는구나.”
의류 브랜드 사업을 하는 류동은(36) 씨는 “골프 처음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클럽 선택이었다. 뭐가 좋은지 모르니까. 하지만 피팅을 통해 데이터들을 확인하고 따로 시타도 해보면서 내게 가장 잘 맞는 클럽을 골랐다”고 말했다.
‘헤드 스피드’ ‘볼 스피드’부터 ‘스매시 팩터’ ‘페이스 앵글’ ‘다이내믹 로프트’까지. MZ들은 샷 데이터 관련 용어, 숫자들과 친하다. 스크린골프와 론치 모니터 때문이다. 샷 직후 스크린골프 화면에 뜨는 숫자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비교 분석하고 연습장도 타구 분석용 론치 모니터가 설치된 곳을 선호한다. 야구로 치면 과거에는 생소했던 개념인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 wRC+(조정 득점 생산력) 등이 요즘 팬들 사이에 자주 언급되듯 골프도 그렇게 가고 있다.
스크린골프 예약 애플리케이션 김캐디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이 앱을 통한 연령별 예약률에서 2030 비중은 34.4%나 됐다. 40대 비율(35.9%)을 넘볼 기세다. BC카드 AI빅데이터본부 조사로는 올 4월까지 1년 간 스크린골프 매출이 이전 1년과 비교해 48% 올랐고 회원 수도 37.4% 늘었다.
골린이라 해도 요즘은 골프라는 게임의 흐름을 스크린골프로 어느 정도는 익힌 골퍼가 많다. 한 번도 필드 경험이 없는 4명이 같은 조로 머리를 올리는 광경이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다. 경험자 없는 첫 필드 라운드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최근에는 스크린골프의 대중화로 초보들도 용감해졌다.
스크린골프 화면을 필드로 옮겨 놓은 듯한 시도도 데이터를 중시하는 MZ골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필드에서 티샷을 하면 레이더 센서가 이를 포착해 스윙을 분석해주는 스마트 자동영상촬영서비스다. 헤드 스피드·볼 스피드·구질·최고 높이·날아간 거리 등을 전용 앱을 통해 즉시 확인할 수 있다. 각자 체형과 운동 능력에 따라 낼 수 있는 최적의 데이터를 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연습하는 골퍼도 많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골퍼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레슨 프로들의 스윙을 보다가 마음에 들면 다이렉트메시지(DM)를 보낸다. 원하는 지역을 서로 맞춘 뒤 론치 모니터가 설치된 스튜디오에서 만나 그때그때 레슨 받는 식”이라며 “막연하게 감을 주입하는 방식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드백을 나누는 레슨의 선호도가 높다”고 했다.
◇골프는 밤이다
골프장에 머무는 시간대를 분석한 AGL 자료에 따르면 50대의 경우 정오 시간대 이용률이 가장 높은 반면 2030은 새벽과 야간 시간대 이용률이 높았다. 수도권 한 골프장은 오후 7시 이후 2030 고객 비중이 3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MZ에게 골프는 밤이다. 야간 골프의 성지로 통하는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의 조사에 따르면 이 골프장 이용객 중 30대 비중은 2019년 13.6%, 2020년 13.8%, 2021년 14.1%, 올해(7월까지) 15.1%로 꾸준히 높아졌고 특히 올해 야간 라운드 이용객 중 30대 비율은 25.2%에 이른다.
야간 라운드는 이른바 ‘갬성’을 중시하는 MZ들의 입맛과 잘 통한다. 남들 집에 갈 때 나는 이제 시작인 특별함, 필드의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쌀 때 차분한 밤 공기를 뚫고 티샷 하는 이색 정취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린피가 비교적 저렴하고 ‘야간은 노 캐디 허용’을 내건 골프장이 많은 것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연습장도 한밤이 뜨겁다. 서울 강서구의 쇼골프는 밤 10시 이후에도 연습하러 골프백을 내리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이 시간대 고객은 대부분 2030이다. 3층 전 타석을 ‘클럽’ 콘셉트로 꾸민 결과다. 화려한 네온 조명과 힙한 그래피티(스프레이 벽화),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어우러져 흥을 돋운다. 청바지나 레깅스, 크롭톱(허리가 드러나는 짧은 상의) 차림도 많다. 복장처럼 자유롭게 골프 연습을 즐기며 맥주를 홀짝이거나 음악에 가볍게 몸도 흔든다. 이 연습장의 2030 방문율은 지난해 대비 2.5배 이상 늘었다.
류동은 씨는 “출근 복장 그대로 퇴근길에 들르기도 하고 아니면 편하게 레깅스를 입거나 심지어 원피스 차림으로 연습하기도 한다. 골프 연습도 일상 속으로 스며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골프는 신상이다
“라운드 나갈 때마다 다른 옷을 입어요. 그날의 복장이 라운드 기분을 좌우하니까요. 옷이 안 예쁘면 공도 안 맞는 것 같고 그러면 치기 싫어지니까.” 뷰티 인플루언서이자 주 1회 필드 라운드를 즐기는 열혈 골퍼 오유희(37) 씨의 말이다.
매 라운드 새 옷을 살 수는 없는 법. 오 씨는 “요즘은 구매는 줄이고 주로 렌탈을 이용한다. 보통 신상(신상품)이 출시되면 렌탈해서 입은 뒤 반납하곤 한다”고 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골프웨어 렌탈’만 쳐도 10여개 업체가 뜰 정도로 렌탈 문화는 주로 여성 MZ골퍼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필드 나갈 때 예쁘게 신상을 차려 입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잘 파악했다는 평가다.
남성 MZ 중에는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골퍼가 많다. 한 브랜드에 꽂혀 그 회사 제품만 사는 ‘한우물파’다.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근무하는 이반(33) 씨는 2016년 제품 ‘뉴 G’ 드라이버를 써본 뒤 핑골프에 푹 빠진 케이스다. 퍼터, 아이언까지 핑으로 바꿨고 드라이버와 퍼터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매번 구입한다. 지금까지 구입한 핑 퍼터는 7개, 드라이버는 5개이고 아이언 세트도 세 번이나 샀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핑 마니아들과 활발히 교류하는가 하면 핑 창업자 카스텐 솔하임의 일대기를 담은 책까지 구해 읽었다.
대학생 조원빈(24) 씨는 타이틀리스트 마니아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선수인 애덤 스콧(호주)이 오랫동안 타이틀리스트 아이언만 썼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915’ 드라이버를 정말 갖고 싶어서 집에 있는 전자제품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도 했죠.” 주변의 20대들은 어떨까. “누군가 새로운 골프 용품이나 의류를 사서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마음이 바빠지는 것 같아요. ‘나도 이거 사고 싶다’ 하는. 원하는 아이템을 사기 위해 계획적으로 돈을 모으거나 아니면 월급의 절반까지 투자하는 사람도 봤어요. 물론 중고로 팔아도 잘 팔리니까 그 정도 투자를 할 수 있는 거겠죠?”
◇골프는 세대 간 소통이다
한 달에 세 번 꼴로 필드 라운드를 즐기는 이반 씨는 종종 포털사이트의 골프 조인 카페를 이용한다. 시간 되는 친구 한 명과 라운드 계획을 짠 뒤 다른 동반자 2명은 조인 카페에서 구하는 식이다. “모르는 사람과 라운드라 어색할 거라 생각하지만 저는 딱히 그런 거 모르겠더라고요. 루틴이 길거나 너무 초보인 친구랑 치는 것보다는 핸디(핸디캡) 맞는 분들과 조인해서 치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해요.” 이 씨는 “보통 저희보다 훨씬 높은 나이대 분들과 조인이 이뤄진다. 최근에는 50대 부부와 쳤는데 아주 즐거웠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골프의 재미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골프 조인을 사적인 만남의 수단으로 이용해 벌어지는 사건·사고도 이따금 있지만 대부분은 라운드 하는 시간 동안만 어울린 뒤 쿨하게 헤어진다. MZ는 골프를 통해 선배인 X세대, 심지어 베이비붐 세대와도 소통한다.
박미영 씨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여가로 골프 만한 게 없다”며 “골프로 만나면 그 안에서 나이나 빈부 같은 건 무의미해진다. 그저 골프 잘 치는 사람이 1등으로 인정받을 뿐”이라고 했다.
◇골프는 연애다
“골프가 재밌는 이유? 연애랑 비슷해서요. 처음에는 연애 초기의 ‘썸’이나 ‘밀당’처럼 될 듯 말 듯한데 계속 연습하고 친해지면 어느 날 갑자기 확 되잖아요. 그렇게 마음을 놓게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다시 잘 안 되니 계속 노력해야 하고….” 한세희 씨의 말이다.
80대 중반을 치는 이반 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골프는 어려워서 재밌는 거 같아요. 다른 운동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좀 시시해지는데 골프는 코스에 따라 스코어도 왔다 갔다 하고 매번 새로우니까. 저한테 골프는 끝까지 같이 갈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꽃처럼 확 타올랐다가 빠르게 식는 짧은 연애도 있는 법.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폭발했던 MZ골퍼의 유입이 최근 들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 같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플렉스 문화가 시들해지고 짠테크가 뜨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한 골프웨어 업계 관계자는 “골프용품 업계와는 또 다르게 의류 쪽은 시장 흐름이 빠르게 바뀐다. 한창 잘나가던 브랜드들도 매출 성장세가 꺾이는 등 변화가 심상치 않다”며 “언제까지 MZ만 타깃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고 밝혔다.
골프장 업계 관계자도 “작년만 못 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한 제한에서 벗어나면서 여가 활용의 선택지가 다양해진 영향도 있겠지만 골프를 계속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크게 실감하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단기간에 집중 유입된 MZ골퍼들이 골프계에 고정 고객으로 뿌리내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 스크린골프 예약 앱 김캐디 측은 “기존의 골프 수요층은 일부 보여주기식 ‘인스타그램 골퍼’에 반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트렌드에만 민감한 골퍼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며 “골프 본연의 매력에 빠진 신규 골퍼들이 안착해 시장에 건강한 활기가 돌고 더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이어 “골프는 한 번 배우면 평생을 가는 스포츠라 최근 몇 년 새 유입된 MZ들도 꾸준히 골프를 즐기며 대세에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81년생인 저, MZ인가요?”
“1981년생인데 저도 MZ세대인가요?”
MBTI부터 SNS, 암호화폐, 구독경제, 미닝아웃(meaning과 coming out을 합친 말로 개인의 취향과 신념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선언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신조어)까지…. 트렌드 종결자로 불리는 MZ세대에 ‘4학년 1반’이 포함된다고 하니 ‘킹리적 갓심(누가 봐도 확실히 의심할 상황)’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인 통념상 MZ세대는 곧 젊음이다. 하지만 그 진짜 의미는 생각과 많이 달랐다.
요즘 핫한 MZ세대가 갖고 있는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MZ세대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언뜻 보기에 세계적인 트렌드로 불리는 용어 같지만 사실상 한국에서만 쓰인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밀레니얼세대(1981~1996년생)와 Z세대(1997~2012년생)를 칼같이 구분한다.
MZ세대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2018년 11월.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 발간한 책 ‘트렌드 MZ 2019’에서 마케팅 목적으로 사용하면서부터다.
먼저 M을 의미하는 밀레니얼세대는 X세대와 Z세대 사이의 집단이다. 예전에는 Y세대로 불리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에 출생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밀레니얼과 함께 모바일(Mobile), 마이셀프(Myself), 무브먼트(Movement)의 첫 글자를 따 모바일로 모든 활동을 하고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의미도 갖는다. 밀레니얼 바로 뒤를 잇는 Z세대는 1990년대 중후반과 2010년대 초 사이 출생자들로 정의한다. 이들은 대부분 X세대의 자녀로 태어났을 때부터 디지털 생활을 영위해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린다.
이제는 끈끈한 결속력이 있는 듯 묶여버린 M세대와 Z세대. 하지만 크게 30년까지 차이가 나는 세대를 한 묶음 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실제로 한국리서치가 올해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응답이 68%였으며, Z세대 응답자의 61%가 밀레니얼세대와 하나로 묶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또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MZ세대의 범위는 16~31세로 올해 만 41 세가 되는 1981년생은 사실상 턱도 없다. 넓게 보면 MZ가 맞긴 하지만 MZ세대 내 ‘동생’들의 시선에는 불청객이라는 얘기다.
MZ 말고 또 어떤 세대 있나?
가장 잘 알려진 것이 6·25 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다. 그 뒤는 386세대. 다음은 이 두 세대와 MZ세대 사이의 X세대다. 스스로를 ‘낀’ 세대라고 부르는 X세대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로 정의한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meme)인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 인터뷰가 X세대의 자유로운 가치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후 밀레니얼세대, Z세대가 뒤를 이었고 다음이 알파세대다. 이들은 2010년대 초반 이후 태어난 세대로 Z세대와 세대 구분이 겹치기도 한다. 하지만 Z세대가 성장 과정에서 아날로그적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은 반면 알파세대는 출생과 동시에 스마트폰과 디지털 매체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연습벌레의 인생역전…2인자 삶에서 ‘12만’ 골프 유튜버로
“골프 안 배웠으면 이런 호사를 제가 누렸을까요?”
박연습(본명 박미영)은 MZ세대 골퍼들이 열광하는 골프 유튜버 중 한 명이다. 유튜브 시작 첫해 4만 정도였던 구독자 수는 2년이 지난 지금 ‘떡상’을 해 12만 명을 넘었다. 주요 시청층의 절반이 MZ세대로 대표되는 2030세대다. “저도 1981년생이니까 넓게 보면 MZ”라는 그. 헤어 디자이너에서 이제는 유명 골프 유튜버가 된 ‘연습벌레’ 박연습을 만났다.
올해로 구력 6년인 박연습은 연예인과 유명 레슨 프로가 점령한 골프 유튜브 세계에 ‘연습’ 하나로 주목 받는 아마추어 골퍼다. 그런 그에게 연습을 선물한 것은 친구.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골프를 시작한 박연습은 “아기 엄마인 친구가 나보다 잘 쳐서 솔직히 짜증 났었다”면서 “스크린, 필드, 파3 골프장에서도 그 친구가 항상 이기니까 너무 약이 올랐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고 돌아봤다. 이때부터 헤어 디자이너 박미영에게서 박연습의 지독한 연습벌레 기운이 꿈틀거렸다.
박연습은 “일하다가도 손님이 없을 때는 헤어숍 뒤편 마당에서 혼자 스윙 연습을 했다”며 “출근 전에는 매일 연습장에서 레슨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매일 연습 영상을 찍어서 확인하던 그는 휴대폰 저장 용량이 다 차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영상에는 박진철 프로의 레슨 내용을 연습하는 박연습의 모습이 담겨있다. 박 프로와는 4년째 함께하고 있다.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연습하는 박연습의 모습에 사람들은 하나둘 ‘좋아요’ 버튼과 함께 관심을 보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것이다.
2020년 시작한 유튜브 채널은 어느새 ‘실버 버튼’ 수여 충족 조건인 구독자 10만 명을 넘겼다. 실버 버튼을 받은 채널은 유튜브 전체 채널의 0.01%, 수익 창출 채널의 5%에 불과할 정도로 극소수의 유튜버만 달성한 기록이다. 박연습은 “골프장이나 연습장 가면 알아봐 주신다. 평생 2인자 삶만 살아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얼굴도 몸도 주목 받을 게 없는데 골프로 주목 받게 돼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박연습의 이런 감사한 마음은 고스란히 구독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는 “몇 년째 스윙에 대해서 항상 똑같은 질문만 하시는 분이 계셨다. 매번 댓글로 설명해드리다가 그분만을 위한 영상을 따로 만들기도 했었다”고 했다. 구독자들도 그의 영상에 ‘수많은 레슨 봤지만 이건 진짜다’ ‘궁금증 해소. 최고의 레슨’ ‘전 국민이 매일 골프 치기 전에 봐야 할 영상’ ‘어쩜 이렇게 가려운 부분 잘 긁어주는지’ 등의 댓글을 남기며 화답했다. ‘교정 과정 중인 아마추어가 운영하는 채널입니다. 모든 분에게 적용되는 교정법이 아니니 참고만 해주세요’라는 유튜브 채널 설명 글이 무색할 만큼 많은 구독자가 박연습의 영상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레드 티 기준 74타, 화이트 티 기준 84타가 ‘라베(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라는 박연습의 최종 목표는 ‘내가 원하는 스윙’이다. 그는 “사람들은 스코어를 못 내면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 하지만 헬스장 다니는 사람들은 본인 만족 때문에 몸 만들고 흐뭇해 하지 않느냐”며 “저는 제 스윙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없애나가는 것을 흐뭇해 한다. 내가 원하는 스윙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1년 전 본업인 헤어 디자이너 일도 접었다. 매일 불리는 이름처럼 아직도 매일 연습한다는 박연습. 그에게 골프가 재밌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박연습은 “골프는 드라마도 영화도 아니다. 그냥 똑같은 거 평생 하는 거다. 계속 도전하게 만들어서 질리지 않는 게 재미인 것 같다”고 답했다. “골프는 저한테 둘도 없는 친구죠. 하루 종일 골프만 생각해도 정말 재밌으니까.”
95년생 대표가 이룬 ‘덕업일치’
“일상 속에서도 접할 수 있는 분위기면 좋겠다는 니즈가 있었어요.”
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덕업일치’ 시대. 개인의 신념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 사업가는 자신의 니즈에서 여성 골프웨어 브랜드 아넬(ANELL)을 탄생시켰다. 덕업일치를 이룬 아넬의 장승연(27) 공동 대표 얘기다.
의류 디자인을 전공한 장 대표는 대학 시절 취미로 골프를 시작했다. 테니스와 골프를 두고 고민하던 중 선배의 권유로 골프 동아리에 가입하면서부터다. 그는 “2017년 대학 골프 동아리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면서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남녀 차이가 별로 없는 스포츠 같았다. 조금 하다 보면 아버지를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했었다”고 돌아봤다. 최근까지도 1주일에 한 번은 꼭 연습장을 가고 지금까지 골프 레슨도 30~40회 받았다. 그야말로 골프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의류 디자인 전공자답게 기존 골프 의류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장 대표는 “기존 골프웨어는 20대뿐만 아니라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접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스포츠 웨어라는 느낌이 있었다”면서 “필드에서만 착용하는 활용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 속에서도 접할 수 있다면 훨씬 고급스럽겠다 싶어서 스스로 창업에 대한 니즈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넬이다.
2021년 론칭한 아넬은 이제 1년이 갓 넘은 신생 브랜드다. 론칭 당시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 대신 필드를 찾는 MZ세대 골퍼들이 늘어나면서 신규 의류 브랜드가 쏟아져 나왔다. 아넬도 그중 하나였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론칭 첫해에는 코오롱이 운영하는 골프 전문 온라인 편집숍 ‘더카트골프’에 단독 입점하며 입지를 다졌다. 최근에는 국내 백화점 매출 1위로 알려진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과 신세계 소유의 골프장 트리니티 클럽,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까지 입점했다. 아넬은 단기간에 바이어들의 눈에 띌 만큼 남다른 매력을 어필하며 성장 중이다. 이에 대해 더카트골프 관계자는 “아넬은 컨템포러리 감성의 여성복 디자인을 골프웨어와 접목한 디자인으로 차별화된 독보적인 브랜드 콘셉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통했다. MZ세대 대표의 감성이 묻어난 제품은 패션에 민감한 MZ 여성 골퍼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장 대표는 “아넬만의 차별화된 콘셉트를 좋게 봐주셔서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아넬은 골프웨어의 일상화 콘셉트로 일상에 함께 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컬러와 디자인, 기능성 모두를 잡은 새로운 골프웨어 섹션”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장 대표에게 덕업일치를 실현시켜준 골프란 무엇일까. 그는 “골프는 에너지의 원천”이라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이 골프다. 개인적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