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정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유럽연합(EU)과 일본도 본격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제 대응한 우리 정부가 EU, 일본과 뜻을 모아 공조를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EU와 일본 당국은 IRA가 자국 전기차 판매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위원은 14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양자회담을 갖고 IRA의 차별적 성격에 우려를 표했다. EU집행위도 “EU는 기후행동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환경 조치가 차별적이고 세계무역기구(WTO)와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설계되면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 정부 역시 미국 정부에 불만을 드러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7일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에게 IRA가 일본 브랜드의 전기차 판매에 타격을 주며 이번 조치가 WTO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미 일본 대사관도 미국 현지 매체 폴리티코에 “우리는 이번 조치(IRA)가 WTO 규정에 적합한지 의구심이 들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미국 정부에 우려를 전달했고 EU를 포함한 다른 파트너들과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서명한 IRA는 북미에서 최종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법안이 통과된 지 한 달이 지난 점을 고려하면 EU와 일본의 반발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IRA를 속도전으로 통과시키며 양국 정부가 법안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는 작업이 지연된 탓이다. 존 보젤라 미국자동차협회(AAI) 회장이 “IRA 통과는 의회에서 1개월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AAI조차 놀랐다”고 밝힐 정도로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이 정치적 성과를 위해 IRA를 무리해서 밀어붙였다는 것이 현지 정치권의 중론이다.
국내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EU와 일본이 IRA를 공식적으로 문제삼기 시작한 만큼 한국 정부가 이들과 힘을 합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IRA가 통과된 직후부터 모든 채널을 동원해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 법안을 성과로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를 단독으로 설득하는 작업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축적한 전략을 EU, 일본과 공유하고 미국과 협의를 이끌어가야 한다”며 “미국과 FTA 체결국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며 법안 수정 과정에 최대한 우리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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