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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윤태식 관세청장 "기업 수출입 데이터 가공…품목별 '공급망 지도' 구축할 것"

[서경이 만난 사람-윤태식 관세청장]

■대담=이상훈 경제부장

수백만 통관 정보 활용, 공급 위기 대응하고 민간에도 개방

면세점 온라인 플랫폼 진출 허용 등 통해 면세 산업 활성화

작년 마약 밀수 사상최대…수사 인력 대폭 늘려 강력 단속

윤태식 관세청장이 7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기업이 어떤 나라에서 무슨 품목을 수입해오는지 알 수 있는 곳은 관세청뿐입니다. ‘요소수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만큼 관세청이 가진 정보를 사전에 활용해 위기에 대응하려 합니다.”

윤태식(사진) 관세청장은 7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관세청의 보폭을 넓혀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틀에 박힌 세관 업무에 묶여 안주하기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첨병으로 관세청을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다.

실탄은 관세청에 매 시간 쌓이는 통관 데이터다. 축적된 데이터가 공급망 위기뿐 아니라 고물가와 수출 둔화 등 우리 경제에 닥친 난제를 풀 키가 될 것으로 윤 청장은 보고 있다. ‘세관 데이터는 기업의 기밀 정보’라며 노출을 극히 꺼려왔던 이전 청장들과는 시각이 사뭇 다르다.

윤 청장은 “관세청에 접수되는 하루 수출입 신고 건수만 수십만 건이고 여기서 비롯되는 정형·비정형 데이터는 수백만 건에 달한다”면서 “관세청이 쥐고 있는 수출입 데이터를 가공해 ‘공급망 지도’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발 더 나가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관세청 데이터에 직접 접근해 분석할 수 있도록 ‘데이터 분석센터’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서경이만난사람] 윤태식 관세청장. 오승현 기자


윤 청장은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로서 보기 드물게 국제금융과 정책 조정, 세제 등 다양한 업무를 섭렵했다. 관행적으로 해오던 업무에 매몰되지 않고 시야를 넓혀 경제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30여년간 경제 전반을 두루 살핀 공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윤 청장은 통관 데이터를 접목하려는 분야로 공급망을 첫손에 꼽았다. 윤 청장은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는 첫 단계는 우리가 어떤 품목 수급에 취약한지를 알아내는 것”이라며 “관세청이 수출입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면 다른 부처에서는 이를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윤 청장은 “통관 데이터가 기업의 기밀 정보라 그간에는 거의 공유되지 않았는데 구체적인 기업 명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를 가공해 활용할 계획”이라며 “모든 품목에 대한 ‘공급망 지도’를 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윤 청장이 구상하는 공급망 지도는 기업의 거래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 불화수소를 판매하는 곳은 일본의 모리타화학공업 1곳, 수입 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곳이라는 원 데이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관세청은 이를 불화수소 수출 업체는 일본 제조사 1곳, 수입 업체는 국내 반도체 기업 2곳이라는 형태로 가공한다. 품목을 넓혀 이 같은 가공 정보를 종합하면 모든 품목에 대한 수급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해외 수출국이나 수출 업체, 수입 업체 수가 적은 품목만을 따로 분류해 수입선을 사전에 다변화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윤 청장은 “통관 정보를 활용하지 않으면 정부가 업체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급 선을 파악해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수급선을 기밀 정보로 분류하는 탓에 조사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세청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지난달부터 공급망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고 올해 안에 주요 부처에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윤 청장은 주요 데이터를 민간에도 폭넓게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 민간이 관세청 무역 데이터에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한 법률 근거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법은 납세자가 제출한 자료나 업무상 취득한 자료를 원칙적으로 타인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관세청은 비식별 조치를 거친 데이터를 민간이 분석하거나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윤 청장은 “개정 이전이라도 적극 행정 차원에서 민간의 무역 데이터 활용 사업을 시범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상거래 성장세를 고려해 별도의 통계를 공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윤 청장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소비 트렌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면서 “2023년 상반기 중 전자상거래 통계를 개발해 공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관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그간 품목번호(HSK)로 검색해야 했던 수출입 정보도 품목명만으로 찾을 수 있게 개편할 계획이다.

윤 청장이 관심을 쏟는 또 다른 분야는 각종 규제다. 취임 일성을 통해 ‘과감한 규제 완화’를 약속할 정도로 규제 혁신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윤 청장은 면세 업계를 옭아매던 낡은 제도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 면세 사업자가 모든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면세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윤 청장은 “면세 산업이 한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지만 이제는 위기에 직면한 산업이 됐다”면서 “국제경쟁력 회복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면세 사업자는 원칙적으로 오프라인을 통한 판매만 가능했다. 윤 청장은 “온라인 판매가 예외적으로 허용되지만 사업자가 직접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하는 경우로 제한해왔고 예외 대상도 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국한됐다”고 말했다. 윤 청장은 이를 바꿔 모든 면세 사업자가 온라인 플랫폼에 ‘몰인몰(mall in mall)’ 형태로 입점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기로 했다. 윤 청장은 “네이버쇼핑이나 쿠팡이 온라인 쇼핑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지 않고는 면세점의 온라인 판매가 쉽지 않다”며 “(이번 조치로) 면세점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해외로 출국할 때 공항이나 시내 면세점에서 구입한 면세품을 입국 시 받을 수 있는 ‘입국장 인도장’도 도입했다. 입국장 인도장이 생기면 소비자들이 해외여행 내내 번거롭게 면세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윤 청장은 “내년 상반기 부산항을 시작으로 공항 등으로 인도장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출의 전초기지인 보세 공장의 반입 품목 제한도 크게 풀었다. 윤 청장은 “그간 보세공장에 사전에 허용된 품목만 들였으나 7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해 모든 물품의 반입을 허용했다”면서 “기업들의 신발 속 돌멩이를 제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보세공장은 외국에서 들여온 원자재나 부품에 관세를 보류한 상태로 공장에 반입한 뒤 이를 가공해 수출하는 공장을 말한다. ‘가공무역 진흥’을 취지로 도입된 제도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셀트리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다. 윤 청장은 “반도체 수출의 경우 전체 매출의 96%가 보세공장을 통해 이뤄진다”며 “반도체 등 우리 첨단 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화하는 마약 밀수에 대한 강력한 단속 의지도 보였다. 윤 청장은 “한국은 2015년 이후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라며 “불법 마약류에 대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 수 추이를 살펴보면 2015년 23.3명에서 지난해 31.2명까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지난해 세관에 적발된 마약류 밀수량은 1272㎏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윤 청장은 “지난해 마약 사범 중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56.8%까지 올랐다”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해외·온라인상에서 마약류에 노출될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 청장은 “2월에 인천세관에 마약 수사 1개과와 정원 12명을 늘렸다”면서 “7월에는 인천세관 중심의 기존 마약 수사 체계를 서울·부산·광주·대구·평택 세관까지 확장해 전국 차원으로 확대 개편했다”고 말했다. 12월에는 인천과 부산세관에 마약 수사 인력 20명을 추가로 보강할 계획이다. 윤 청장은 “3D X레이와 마약탐지기 등 첨단 장비도 지속적으로 보강할 계획”이라면서 “인공지능 기반의 고해상 복합 X레이 장비 개발도 함께 추진해 적발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He is…

△1969년 경남 합천 △서울 영동고 △서울대 경영학 학사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학 석사 △행정고시 36회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국제기구과장·통상정책과장·외화자금과장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정책조정국장·대변인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세제실장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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