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무엇일까. 김환기의 ‘우주’라는 작품이다.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132억 원에 거래됐다. 한국 미술품이 100억 원 넘는 가격에 낙찰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이 그림을 담은 대체불가토큰(NFT) 에디션이 국내 가상자산 경매시장에 나왔다. NFT 형태의 ‘우주’ 3점은 총 7억 원에 낙찰됐다. 작품 값은 이더리움으로 지불됐고 낙찰자에게는 디지털화된 ‘우주’ NFT를 LG올레드TV에 담아 전달한다고 한다.
가상자산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가상자산이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시장의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하지만 늘 기분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5월 국산 코인 루나가 사흘 만에 99%나 폭락했다. 투자자뿐 아니라 관전하는 모든 사람까지 큰 충격에 빠졌다. 소위 ‘코인 반대론자’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며 17세기 ‘튤립 광풍’이나 ‘폰지 사기’에 비견하기도 했다.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기 직전의 혼돈 상태를 카오스라고 한다. 가상자산 시장도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가는 모종의 카오스를 겪고 있는 것이리라. 최근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는 상태를 정돈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가상자산 시장이 새로운 산업으로, 새로운 투자처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제도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가상자산 시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낯설지만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진다.
가상자산 시장과 증권시장은 그 시작점이 많이 닮았다. 증권거래는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탄생했다. 주식회사 지분을 쪼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한 시도는 그 시절 대단한 혁신이었다. 다만 지금의 모습으로 제도화되기까지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었다. 증권시장의 역사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촘촘한 법체계와 효율적인 시장구조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가상자산 시장 역시 같은 제도화 과정을 거치리라 생각한다.
서로 닮은꼴을 가졌음에도 가상자산은 증권시장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의미한 대결 구도보다 상생이 더 중요해졌다. 증권시장이 쌓아온 다양한 노하우를 공유해 기술 본위의 가상자산에 금융 DNA를 심어야 한다. 전통적인 증권시장은 블록체인 기술을 받아들여 다양한 디지털 인프라 혁신을 이뤄야 한다. 앞으로는 두 시장이 ‘윈윈’하는 더 많은 방법이 제시될 것이라 기대한다.
김환기의 ‘우주’는 두 폭의 그림을 하나로 이은 작품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공전하는 별을 점화(點畵)로 표현한 두 개의 동심원이 나란히 걸려 있다. 하나는 증권시장이고 나머지는 가상자산 시장일지도 모르겠다. 김환기의 ‘우주’에는 ‘상생’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하니 두 우주가 조화롭게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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