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년 사이 서울에서만 택시 기사 1만 명 이상이 빠져 나갔습니다. 전체 기사의 약 30%가 일을 그만뒀고 지금도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신주하 서울택시노조 국장)
“같은 거리를 운전해도 최소 20%는 더 버니까 대형 택시와 고급 택시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죠. 부제 제한도 없고 무엇보다 자유롭게 영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수원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본부장)
코로나19 이후 택시 영업 상황이 악화하며 기사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그나마 남아 있는 운전사들은 중형 택시를 버리고 대형 택시로 몰리고 있다. 대형 택시가 중형 택시에 비해 약 50% 이상의 수익을 더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 택시로 면허를 바꾸려면 운행 기간 등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해 택시 기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0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택시 영업이 악화하며 전국 택시 운전자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에 따르면 전국 택시 운전자는 올해 7월 말 기준 23만 8431명이다. 지난해 같은 시간 택시 기사가 24만 3378명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1년 만에 약 5000명이 급감했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차이는 훨씬 크다. 2019년 7월 말 26만 8214명에 달했던 택시 운전자는 3년 만에 약 11.1% 급감했다.
택시 기사가 업계를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납금 제도와 장시간 근로, 저임금 문제 등 오랜 기간 고쳐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수익 악화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기사들이 일을 관두는 것이다. 택시 기사인 김 모 씨는 “통계로는 10% 정도가 줄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서울 택시 기사들이 40~50% 빠져나갔다”며 “편법적인 방법으로 24시간 가까이 차를 운행하는 기사를 빼면 훨씬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택시 업계 전반에 ‘기사 가뭄’이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유독 대형 택시만은 신규 기사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2019년 말 출시한 대형 택시 서비스 ‘카카오 T 벤티’는 최근 1000대를 돌파했다. VCNC의 ‘타다 넥스트’도 1100대의 차량 계약을 맺었다. 진모빌리티의 ‘아이엠택시’도 800대를 운영하고 있다. 세 회사의 차량을 합하면 3000대에 육박한다. 대형 승합차 기반 서비스의 시초 격인 ‘타다 베이직’의 종료 당시 운행 차량인 1500대의 2배에 달한다.
차량 출고가 지연돼 계약을 완료한 기사들이 택시 운행을 하지 못하는 진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카카오 T 벤티는 이미 운영 중인 1000여 대에 대기하고 있는 기사를 합하면 2000대 이상이다. VCNC의 직영 운수사인 ‘편안한 이동’에 이력서를 넣고 대기 중인 인원도 150명이 넘는다. 아이엠택시에도 매주 200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기사들을 유인하는 요소로는 단연 높은 처우가 꼽힌다. 2015년 마련된 관련 법령에 따라 대형·고급 택시는 최대 4배 높은 탄력 요금제를 적용할 수 있다. 심야 시간 등에 한시적으로 요금을 평균 두 배가량 올려 받는 식이다. 택시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일한 조건에서 일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대형 택시 기사의 벌이가 중형 택시보다 40~50% 이상 많다”며 “대형 택시뿐 아니라 카카오 블랙, 리무진 등 고급 택시를 운전하고 싶어하는 기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택시의 일평균 매출은 20만 원을 웃돈다. 대부분이 개인택시인 카카오 T 벤티, 타다 넥스트와 달리 100% 법인택시로 운영되는 진모빌리티 기사의 평균 월급도 350만~370만 원에 달한다. 지난해 법인택시 기사의 월 평균 수입 169만 원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기사들이 대형 택시를 선호한다고 해도 모두가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택시기본조례 시행규칙에 따라 5년 무사고 택시 운행 경력 등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만 대형 택시를 몰 수 있다. 택시 기사 김 모(58) 씨는 “대형 택시로 갈아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자격 조건이 까다로우니 가고 싶어도 못 간다”며 “특히 젊은 층이 유입되기가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택시 시장에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수원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본부장은 “소형·경형·중형 등 승용차로 택시를 운행하는 쪽은 서울시가 일괄 요금제를 적용하지만 대형 승합차 등 고급 택시는 신고 요금제를 적용한다”며 “수요와 공급이 시장 논리에 따라 변해야 하는데 한쪽만 서울시에서 요금을 고정하다 보니 수입에서 차이가 많이 나고 규제 정도도 다르다 보니 양극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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