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조 원을 투입해 역대 최대인 쌀 45만 톤을 매입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1977년 이후 가장 큰 낙폭(전년 대비 24.9% 하락)을 기록한 쌀값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여기에 쌀값 추가 하락으로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과잉 생산 쌀 의무 격리제’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에 동력이 생기는 상황을 기필코 막겠다는 의도도 있다.
25일 당정이 발표한 쌀값 안정화 조치에는 정부가 쓸 수 있는 대책이 총망라돼 있다. 먼저 격리 물량 자체가 올해 쌀 초과 생산량 예상치(25만 톤)와 2021년산 쌀 재고량(10만 톤)보다 많다.
특히 정부가 2021년산 쌀, 즉 구곡까지 시장 격리에 나서는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2021년산 쌀이 11월 이후에도 시장에 남아 신곡 가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이달 1일 연말까지 2022년산 공공 비축 쌀 45만 톤을 매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역시 2007년(43만 2000톤) 이후 최대 매입 물량이자 지난해보다 10만 톤 많은 수준이다. 즉 공공 비축과 시장 격리 물량을 모두 합치면 총 90만 톤의 쌀이 시장에서 격리되는 셈이다. 김 차관은 “90만 톤은 올해 쌀 생산량 예상치의 23.3%에 달한다”며 “쌀 생산량 중 수확기에 시장에서 격리되는 비율이 통상 8.3~18.1%였던 점을 감안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본격 논의되기 전 정부의 쌀값 안정을 위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쌀 시장 격리 계획은 양곡관리법상 매년 10월 15일까지 발표하면 되는데 이번에는 보름가량 일찍 나왔다. 이는 국회가 26일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021년산 37만 톤 시장 격리에 소요된 매입 비용만 연간 7800억 원 수준”이라며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시장 격리에 투입하는 비용이 1조 원을 넘어설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밝혔다. 이번 법안으로 쌀 공급 과잉이 더욱 구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차관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다 매입하면 공급 과잉은 더 심화될 것”이라며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로막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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