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카우가 ‘내돈내한’ 시대를 열겠습니다”
한우는 비싸다. 내 돈 내고 내가 사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비싼 한우 값의 원인으로는 복잡한 유통 단계가 꼽힌다. 경매장에서는 2022년 기준 평균 두당 950만 원에 팔린 한우가 6~7단계를 거쳐 최종 소매자에게는 2250만 원에 팔리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유통 구조를 뜯어고쳐 ‘내돈내한(내 돈 내고 내가 한우를 사 먹는)’의 서막을 열겠다는 당찬 청년이 있다.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 여덟, 안재현 스탁키퍼 대표다. 스탁키퍼는 한우 조각투자 플랫폼인 뱅카우를 운영하는 회사다.
19일 서울 여의도 위워크에서 만난 안 대표는 환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 전 우려가 앞섰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시중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요즘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그러나 뱅카우는 예외란다. “괜찮냐”고 묻자 안 대표는 괜한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는 대뜸 숫자부터 읊었다.
“지난해 9월까지 투자받은 금액이 5억 원이었는데 1년이 지난 올 9월에는 50억 원으로 10배나 불어났습니다. 한우 조각투자를 원하는 개인투자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탄탄한 회원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뱅카우의 장점입니다. 회원 수는 약 2만 7000명에 달합니다. 이 중 투자 핵심층으로 분류되는 3040 남성 비중이 50~60%를 차지합니다. 올 9월까지 KT인베스트먼트와 나이스투자파트너스·인라이트벤처스 등으로부터 22억 5000만 원을 투자받았습니다.”
뱅카우가 세상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20년 10월이다. 이제 2년을 꽉 채웠다. 짧은 기간이지만 투자자들의 발길을 단단히 붙들어놓았다. 한우라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과 안정적인 수익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안 대표는 “최소 금액 4만 원(송아지 구매 가격과 사육 비용 포함)으로 송아지 소유권의 일부를 사서 18개월에서 24개월 뒤 경매가 이뤄지면 수익을 가져가는 게 한우 조각투자의 핵심”이라며 “송아지부터 소까지 사육해 경매에 부친 뒤 올린 수익률이 지난 10년 기준 연평균 19.7%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방어 역할도 톡톡히 한다. 안 대표는 “한우는 공급보다 수요가 늘 앞서 있어 가격 전가력이 높다”며 “여타 조각투자 업체와 달리 뱅카우로 개인투자자들이 꾸준히 몰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뱅카우가 인기를 끄는 요인은 또 있다. 조각투자 상품 중 한우는 채권과 비슷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한우는 암호화폐처럼 가격 등락 폭이 클 수 없는 상품으로 평균 수익률이 10~20%, 많아야 40~50%가 전부”라며 “정해진 시점(18~24개월 뒤)에 팔리고 매달 투자한다는 가정하에 월별로 수익이 들어오게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우가 사육 중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고 해도 원금이 보장되는 것 또한 장점이다. 안 대표는 “전염병이 돌거나 불의의 사고로 한우가 사육 도중 죽을 수도 있다”면서 “구제역 같은 1급 가축전염병은 국가가 100% 보상을 하고 사고가 나면 가축재해보험에서 80%, 농가가 20%를 보장해 구매금의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뱅카우의 특별함은 또 있다. 세계 최초의 한우 조각투자 플랫폼인 데다 아직까지 시장 내 경쟁자가 없다. 안 대표는 “1차산업인 축산업과 조각투자라는 4차산업을 같이 하는 특성으로 인해 한우에 대한 조각투자가 어렵다”며 “특히 한우 농가라는 파트너와 협업하는 일도 일종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수익 모델이 다른 점도 경쟁자가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안 대표는 “다른 조각투자 업체들은 중개 수수료나 거래소 수수료를 수익 모델로 삼고 있다”며 “뱅카우의 중개 수수료는 1%에 불과한데 우리의 최종 목표는 뱅카우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키운 소를 시장에 내다 파는 커머스 시장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당장 한우 조각투자 중개, 거래소 운영으로 수수료 장사를 하기보다는 뱅카우 투자자들의 펀딩 자금으로 기른 한우를 직접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한우 유통·판매 진출을 위해 뱅카우는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사육하는 한우를 최대한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 뱅카우가 펀딩해 사육 중인 한우는 257마리이며 올해는 총 2500마리를 예상한다. 한 해 사이 10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안 대표는 “갈 길이 멀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한우가 총 330만 두(약 22조 원)인데 매년 태어나고 도축되는 게 평균 50~70만 두(약 7조 2000억 원) 정도”라며 “뱅카우는 국내 전체 한우 중 겨우 0.07% 정도를 사육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중간 마진을 쏙 빼고 합리적인 가격에 한우를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뱅카우 투자자가 펀딩한 자금으로 기른 한우를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한우 사육 두수 확보 외에 한우 유통업 진출을 위한 밸류체인도 구축하고 있다. 안 대표는 “도축장·가공장·거래처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이르면 올해 말에 소비자에게 뱅카우 투자자가 펀딩한 한우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안 대표가 한우 조각투자에 뛰어든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자산으로서 한우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봤고 늘 빠듯한 자금 사정으로 제대로 된 수익 창출을 못 하는 한우 농가의 어려움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부모님은 경기도 여주에서 한우 약 100마리를 사육했습니다. 농가의 한우 수용 능력은 250마리였는데 자본이 부족해 100마리가 한계였습니다. 한우 한 마리를 사육하는 데 평균 800만 원이 듭니다. 경매로 팔기 전까지는 농가가 자체로 가진 돈이나 빚을 내 충당해야 합니다. 농가가 아무리 빚을 끌어와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원도 농가의 경우 사육 능력 대비 40~50% 정도, 경상도 일부 지역은 아예 축사가 비어 있는 곳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는데도 자본이 부족해 사육을 못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2017년부터 저와 아내는 자비를 들여 송아지를 사 어머니 목장에 넣어드렸습니다. 이때 수익이 잘 나올 때는 50%까지 되는 것을 보고 한우가 안정적인 데다 고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처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조각투자 업계의 증권성 이슈다. 뱅카우도 예외는 아니다. 안 대표는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금융 당국이 판단할 사안”이라면서도 “올 7월 금융 당국에 혁신금융서비스(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으며 소비자 보호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회사의 비전을 “한우의 가치를 세우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한우의 문화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비전”이라며 “그 첫 단계에 뱅카우라는 한우 자산 플랫폼이 탄생했고 직접 유통·판매·생산 솔루션 등의 사업을 영위해 최종적으로는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이 모두 만족하는 한우 유통 시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안재현 스탁키퍼(뱅카우) 대표는
△1986년 여주 △서울 동북고 △UC버클리 경제학 △한화무역 식량자원팀 △주식회사 스탁키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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