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달아올랐던 미술시장에 서늘한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서울옥션이 지난 27일 그랜드조선 부산에서 진행한 ‘부산 세일’이 낙찰률 68.5%를 기록했다. 지난해 최고 93%까지 치솟았던 낙찰률이 최근들어 급락하는 조짐이다. 미술 경매시장에서는 통상적으로 낙찰률 70% 이하를 “썩 좋지 않은 결과치”로 분석한다. 28일 진행된 케이옥션 메이저 경매는 낙찰률 70.5%로 마감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그늘이 짙었던 지난 2020년의 낙찰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옥션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초록색 ‘호박’(낙찰가 19억5000만원)을 비롯해 박수근·박서보·유영국 등이 선전했고, 케이옥션에서는 이중섭·정상화·이배 등의 작품이 새 주인을 찾아갔다.
■'핫'했던 작품 줄줄이 유찰
유찰은 멜 보크너, 하비에르 카예하, 조르디 커윅, 아담 핸들러, 에드가 플랜스 등 소위 2021~22년 호황기 시장에서 ‘핫’ 했던 해외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가장 큰 폭의 가격 상승과 경합을 보였던 작품들의 거래가 위축된 셈이다. 이우환의 드로잉을 비롯해 남춘모·이건용의 일부 작품이 유찰됐다. 유찰된 멜 보크너의 ‘HA’는 지난해 3월 650만원에 낙찰된 작품이 1년 6개월 만에 리세일로 다시 경매에 오른 것으로, 추정가 800만~1500만원에 출품됐으나 응찰자가 없었다. 이처럼 보유기간 3년 미만의 단기 재거래(리세일)는 미술품에 대한 희소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가격 하락이나 유찰이 불가피하다. 호황기 미술시장에 새로이 진입한 ‘투자주도형’ 컬렉터의 경우, 기존 미술애호가들의 장기 소장 경향과 달리 단기 보유 후 재거래를 통한 이익실현을 추구한다. 지난해 우국원·문형태·김선우 등 국내 인기작가를 필두로 외국의 젊은 ‘라이징 스타’에 대한 ‘투자형 수요’가 급증했으나 최근 들어 이들 작품의 리세일 증가와 함께 가격 하락 기조가 포착된 바 있다.
■조정기인가, 숨고르기인가
호황을 보이던 미술시장에 냉기가 감도는 것에 대해서는 조정 국면 돌입 혹은 재충전을 위한 일시적 현상 등 의견이 엇갈린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집계한 국내 경매시장의 분기별 낙찰총액은 지난해 2분기 약 921억원에 이어 3분기 945억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후 4분기 848억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올해 1분기는 785억원, 2분기 665억원으로 하강곡선을 그렸다. 28일 추산한 3분기 낙찰총액은 하락폭이 더 벌어진 410억원이었다.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올 초부터 보여온 미술시장의 하락 조정세가 이어지는 듯하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미술시장의 호재가 뚜렷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이달 초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처음 열려 65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거래를 이뤄내는 등 미술시장 호황기 현상에 따른 일시적 피로감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대표를 지낸 미술시장 전문가 김순응 씨는 “대형 아트페어 직후의 피로감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정으로 보이지만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과열 기조에서 만들어진 ‘거품’이 제거되는 신호는 장기적으로 시장이 건전한 기반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국내외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이벤트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옥션은 대기업 신세계로의 인수합병이 임박했고, 케이옥션은 지난 22일 LB인베스트먼트의 투자를 받아 295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글로벌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경우 오는 11월 뉴욕 경매에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의 약 10억 달러(1조4000억원) 규모 미술품을 선보이는 호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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