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유럽에 있는 자동차 중 3분의 1이 전기로 동력을 얻었다. 휘발유 자동차는 소음이 크고 냄새가 심했다. 무엇보다 시동을 걸려고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다가 턱뼈가 부서질 위험이 있었다.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가속력도 더 뛰어났다. 그런데도 왜 퇴출됐을까. 전기차는 대도시 바깥의 열악한 도로는 잘 달리지 못한 탓에 여성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어떤 기술이나 상품이 여성적이라면 열등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지구를 구할 여자들’은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인류의 과학기술사를 뒤집어 본다. 가령 바퀴 달린 캐리어가 등장해 여행 산업의 판도를 바꿔 놓은 것은 1970년대 이후다. ‘여자는 짐을 들어줄 남자 없이 홀로 여행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탓이다.
이처럼 책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기술 발전을 어떻게 방해했는지 들여다본다. 또 지금도 청소나 설거지처럼 몸 쓰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가부장적 문화 탓에 집안일을 알아서 해내는 인공지능(AI) 로봇의 등장이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책은 혁신과 창의성을 키워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기후 위기에 지구가 불타는 미래를 바꾸려면 여성과 기술에 대한 우리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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