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 이후 국내 배터리 업계가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불거질 원산지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중국산 수입 비중이 64%에 달할 정도로 편중 현상이 심화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달 캐나다에서 광물 공급 협약을 맺은 LG에너지솔루션(373220)에 이어 SK온까지 호주 기업과 리튬 수급을 위해 맞손을 잡았다.
SK온은 28일(현지 시간) 호주 퍼스시에서 ‘글로벌리튬’사와 리튬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29일 밝혔다. 2018년 설립된 글로벌리튬사는 현재 호주 내 2개 광산에서 대규모 리튬 정광(스포듀민)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광산들에 매장된 리튬양은 총 50만 톤으로 추정된다.
이번 협약으로 SK온은 글로벌리튬사가 소유·개발하는 광산에서 생산하는 리튬 정광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됐다. 또 글로벌리튬사가 추진하는 생산 프로젝트의 지분도 매입할 수 있게 됐다. 양 사는 광물 채굴, 리튬 중간재 생산 등 배터리와 관련한 추가적인 사업 기회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리튬 공급 시기와 공급량은 미정이다.
SK온 입장에서는 이번 MOU 체결로 IRA에 대한 부담을 한층 덜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주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인 만큼 미중 갈등을 피해 원활한 리튬 수급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IRA 법안에는 배터리를 구성하는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에서 채굴·가공해야 내년부터 전기차용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SK온은 호주 외에 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 등에서도 핵심 광물 확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중국 밖에서 원자재 공급선을 뚫는 배터리 기업은 SK온뿐만이 아니다. LG엔솔도 2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현지 기업인 엘렉트라·애벌론·스노레이크와 리튬·황산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공급·가공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엘렉트라에서는 2023년부터 3년간 황산코발트 7000톤을 공급받고 애벌론에서는 2025년부터 5년간 수산화리튬 5만 5000톤을 받기로 했다. 스노레이크에는 10년간 수산화리튬 20만 톤을 공급받는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지난해 5월 호주의 니켈 광업·제련 회사인 레이븐소프 지분을 30% 인수했다. 호주의 또 다른 기업인 핸콕·필바라미네랄스와도 합작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배터리 기업들이 이같이 이른바 탈(脫)중국을 꾀하는 것은 현재 중국산 리튬 의존도가 위험할 정도로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날 한국무역협회가 발간한 ‘배터리 핵심 원자재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 1~7월 한국의 중국산 리튬 수입 비중은 64%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일본(56%)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중국산 리튬 수입액도 16억 1500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2억 8300만 달러)보다 471% 증가했다. 중국의 기후변화나 한중·한미 간 정치 상황에 따라 국내 리튬 조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리튬을 직접 채굴·제련하거나 공급선을 다변화하지 않을 경우 중국발 리스크에 취약해질 수 있다”며 “친환경 리튬 채굴·제련 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호주와 아르헨티나를 유망 대체 공급선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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