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극비리에 할로우맨(투명인간) 실험을 통해 고릴라를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한 과학자가 지침을 어기고 직접 자신에게 이 실험을 해 살과 뼈가 약물에 타들어가면서 사라진다. 결국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실험실 동료들과 죽음의 게임을 시작하는데….’ 2000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할로우맨’의 줄거리다. 당시 과학자들이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자 구조를 예측해 약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우리 눈으로는 관찰할 수 없어 그 원리와 과정을 알기 어렵다. 2000년대 들어서 입자의 모양·움직임·결합력·안정성 등을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계산화학’ 기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게 이 때문이다. 실례로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을 컴퓨터로 분석해 여러 현상의 원리를 이해하며 좋은 소재를 설계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가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0월 수상자인 한정우(43) 포항공대(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는 계산화학을 이용한 촉매와 에너지 재료 설계 연구에서 공을 인정받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화학의 저변을 확산하고 연구를 거듭할수록 데이터를 쌓아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더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정확히 예측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에너지·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교수는 계산화학을 기반으로 고활성·고안정성 연료전지 전극,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용 촉매, 액상유기 수소저장체 설계, 메탄 직접 전환용 촉매 설계와 개발 연구를 해왔다. 이 중 고성능·고안정성의 나노 촉매는 석유화학 공정은 물론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첨단산업 공정의 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는 줄이는 핵심 기반 기술이다. 이 나노 촉매는 성능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지체에 담아서 사용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정의 환경적 요인과 반응물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아 촉매의 크기나 모양이 변한다. 공정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교수 연구팀은 환경 감응형 나노 촉매 기술을 기반으로 화학반응의 효율과 안정성을 높인 나노 촉매 합성·활용 원천 기술을 개발했다. 주위 환경에 따라 금속산화물이 변화하면서 자발적으로 금속 나노입자가 형성되는 촉매를 개발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용출(exsolution)이라고 하는데 특별한 공정이 없어도 환원 조건이 맞으면 고성능·고안정성의 나노 촉매가 금속산화물 표면에 자발적으로 형성된다. 용출 현상으로 합성된 촉매는 고활성과 고안정성을 갖춘 점이 특징이다.
그의 연구팀은 현상 자체에 대한 이론도 증명했다. 금속산화물의 하나인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에서 양이온과 산소의 결합 세기를 조절하면 물질 내 양이온의 용출 현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박막 실험으로 규명한 것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촉매 활성이 네 배까지 늘어난다.
고성능 나노 촉매는 수소에너지의 생산·저장·활용에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 등 각종 온실가스를 줄이고 이를 유용한 화합물로 변환시키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유해물질을 검출할 수 있는 센서로도 활용 가능하다. 한 교수는 “환경·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산업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며 “산학 과제를 수행하며 성능을 확인해 현재 특허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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