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분기 선박과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품목에서 수출 경기가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금리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환율 변동성도 커졌을 뿐 아니라 경기 침체로 수출국 현지 수요도 감소한 데 따른 영향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5일 ‘2022년 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를 발표하고 4분기 EBSI가 전 분기 대비 10포인트 떨어진 84.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지수는 지난 2분기 96.1로 100 밑으로 떨어진 후 3분기 94.4를 거쳐 하락 폭을 더욱 확대했다.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2분기 이후 EBSI가 80점대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BSI가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기업들이 다음 분기의 수출 경기가 직전 분기보다 악화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EBSI가 세 분기 연속 100을 하회하는 원인으로 연구원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지목했다. 인플레이션 심화와 환율 변동성 확대로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됐고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수출 기업의 체감 경기가 악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원이 지난해 수출 실적 50만 달러 이상 무역협회 회원사 2000곳을 조사한 결과 4분기 수출 제품 원가(65.1), 수출 대상국 경기(75.2), 물류·운임(79.3) 환경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수출 채산성(85.6)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환율과 물가 상승에 따라 수출 단가(103.9)는 소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원은 “원자재와 유가, 주요 항로별 해상 운임이 3분기 대비 하락세를 보이며 원재료 가격 상승과 물류비 상승에 대한 애로가 다소 감소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수출 기업의 가장 큰 애로로 꼽힌다”며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자 미국이 고강도 양적긴축에 나섰고 이로 인해 글로벌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수출 대상국 경기 부진과 원화 환율 변동성 확대에 대한 애로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품목별로 보면 선박(149.9)과 반도체(112.0)를 제외한 모든 품목의 수출 여건이 부정적으로 전망됐다. 15개 품목 중 EBSI가 가장 낮은 업종은 가전(49.3)이었다. 인플레이션으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수요가 감소한 영향이다. 전기·전자 제품(51.7)도 원가 상승과 주요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계약 물량과 설비 가동률 등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 위축으로 화학공업(60.5), 철강·비철금속 제품(64.3), 기계류(71.8) 등 업종의 수출 전망도 좋지 않다.
다만 선박의 경우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가 증가하며 업계 체감 경기가 개선됐고 반도체는 최근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과 경기 침체로 시황이 좋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며 EBSI가 100을 웃돌았다.
조상현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고 원자재 수입 비용도 증가하는 가운데 물류난 역시 해소되지 못하고 있어 수출 경기가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4분기 수출 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올해 무역 적자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무역수지는 37억 68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4월 이후 6개월째 적자다. 무역수지가 반년 이상 적자를 기록한 것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위기 이후 약 25년 만이다. 올해 들어 9월까지의 누적 무역 적자는 288억 8000만 달러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1996년(206억 2400만 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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