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경쟁사에 서울 용산의 알짜 부지를 매각하면서 속사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하나대체운용의 직원이 경쟁사인 코람코자산운용에 이직하면서 수백억 차익이 기대되는 땅이 함께 원가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에 궁금증을 낳고 있다.
9일 부동산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하나대체운용은 올 하반기 하나대체투자용산PFV 지분 19.5%를 코람코자산운용에 매각했다. 이 PFV는 서울 용산 '이태원 크라운 호텔' 부지 개발을 위해 현대건설(000720)과 하나대체자산운용, 한국부동산투자신탁, 부동산 디벨로퍼 RBDK 등 4개 기관이 컨소시엄을 이뤄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다.
코람코운용 측은 해당 지분을 PFV가 최초 이 부지를 매입했을 당시 가격으로 사들였다고 밝혔다. 나머지 지분은 현재 현대건설 49.5%, RBDK 25%, 한국부동산투자신탁이 6%를 보유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하나대체운용에서 팀을 이끌던 모 직원이 윗선과의 업무 마찰 등을 계기로 코람코운용에 이직하며 PFV 지분도 함께 넘어간 것으로 업계에 알려졌다. 이 직원은 컨소시엄 결성 초기부터 관계사들과 거래를 주도해 온 담당자인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IB업계에선 소위 황금알을 낳는 땅을 경쟁사에 넘겨준 데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해당 부지가 향후 고급 주거 시설로 개발될 예정인 가운데 수백억원 규모 개발 이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지난해 말 10여곳 원매자들과 치열한 경합 끝에 이 부지를 낙찰 받았다. 낙찰 가격은 2500억 원이었다.
한 부동산 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시장이 침체되긴 했어도 이 부지는 1군 건설사가 시공하는 고급 주거 시설이 들어설 곳"이라며 "용산 공원이 바로 옆에 있어 가치가 높게 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회사 이름을 걸고 어렵게 따낸 부지를 경쟁사에 넘긴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하나대체운용과 코람코운용은 부동산 운용업계 상위권에 올라 있는 경쟁사다. 올 상반기 말 기준 펀드 운용 규모는 하나대체가 약 5조5200억 원, 코람코가 3조9400억 원으로 부동산 운용사 중 10위권 내 포진해 있다.
현대건설 등 컨소시엄 내 다른 관계사들도 운용사 간 지분 매각을 다소 난감한 상황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PFV 지분과 이름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 업무 절차가 지연됐기 때문이다. 실제 컨소시엄은 아직까지 관할 구청에 인허가 접수조차 하지 못해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람코운용은 지분을 넘겨 받은 뒤 이름을 케이스퀘어용산PFV로 변경하고 최근 본격적인 개발 구상을 그리고 있다. 이 부지에 지하 4층~지상 25층, 약 150세대 규모 공동주택과 오피스텔, 상업시설이 포함된 최고급 주상복합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지난달 말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부동산 금융권 안팎에선 이번 거래가 업계에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부동산 자산운용사 대표는 “회사 자금이 투입된 딜(Deal)이 뚜렷한 목적 없이 경쟁사에 넘어가면 중장기 전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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