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역대급 대미 투자 계획을 공개한 현대차(005380)그룹에 대해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가 자체 '열공 모드'에 돌입했다. 투자 규모가 매우 큰 만큼 향후 현대차그룹 발 대규모 자금 조달 창구가 열릴 가능성을 바라보면서다.
15일 IB 업계에 따르면 서울에 거점을 둔 글로벌 사모펀드와 대형 IB들은 최근 현대차그룹의 재무상태 분석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직접 찾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현장에서 전세계 언론을 상대로 투자 계획을 공개한 뒤 벌어지는 현상이다.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은 향후 4년 내 자동차 생산 분야에 86억 달러, 부품·물류·철강 분야에 61억 달러, 미래 산업 및 에너지 분야에 63억 달러 등 상세 투자 계획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이 막대한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직접 투자하는 비중이 높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약 19조 원, 기아(000270) 약 13조6000억 원, 현대모비스(012330) 4조8000억 원에 달한다. 다만 새 공장을 건설하며 금융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은행과 사모펀드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다 쓸 가능성도 상당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계 대형 사모펀드(PEF)의 한국 대표는 “기업이 공장 같은 고정자산을 온전히 소유하지 않고 이를 유동화해 신규 연구개발(R&D) 자금 및 미래 산업 투자금을 마련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라며 “현대차그룹도 미국 금융권에서 다양한 경로로 자금을 조달해 생산시설 건설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국내에 별도 법인이나 사무소를 보유한 글로벌 운용사 중 블랙스톤, KKR, 브룩필드 등 대형 인프라 펀드들이 자체적으로 현대차그룹 스터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보험사 자금을 운용하면서 안정적 투자를 선호하는 아폴로 등도 현대차그룹의 재무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다른 PEF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처럼 신용도가 매우 좋은 기업은 미국에서도 낮은 금리에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며 “이를 감안하면 높지 않은 금리를 추구하는 펀드와의 매칭 가능성이 있을 것”고 말했다.
기업과 투자자 간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주고 구조화 금융에도 능한 글로벌 뱅커들 역시 현대차의 대미 투자 계획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JP모건과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같은 글로벌 IB들이 현대차그룹 관계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 해외 IB의 고위급 인사는 “현대차그룹 정도면 전체 비용 중 40~45% 정도를 어렵지 않게 외부 자금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기 자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면서도 공장 건설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종합적인 금융 컨설팅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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