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과 개인회생·파산 등 도산 사건을 전담하는 전문 법원을 추가 설치해야 한다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만큼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법안이 통과돼도 법원 예산이나 인력 문제 등은 넘어야 할 산이다.
1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여야는 도산 사건을 전담하는 회생법원을 추가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법원설치법 개정안 등을 각각 발의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부산·광주·세종·대구·수원에 회생법원을 확대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 등은 수원,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 등은 부산, 이용선 민주당 의원 등은 각 광역시,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고등법원이 있는 지역 등을 추가 설치가 시급한 지역으로 꼽았다. 우원식·김도읍·박주민 의원은 연계 법안도 추가 발의해 총 8건의 관련 법안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중이다. 이 가운데 부산시와 수원시가 도산 사건 전문 회생법원 설치가 가장 시급한 지역으로 꼽힌다. 부산시는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거주 인구와 개별 사업체가 가장 많다. 수원지방법원은 전국에서 도산 사건 접수가 서울회생법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현재 도산 사건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전문 법원은 2017년 설립된 서울회생법원이 유일하다. 지난 5년간 도산 사건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법인 파산 사건은 2017년 699건에서 지난해 955건으로 256건(37%) 급증했다. 개인파산 사건은 4만 4246건에서 4만 9063건으로 4817건(11%) 늘었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도산 사건 처리 기간이 길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법원 사법연감(2022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법인 회생 계획 인가 후 종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지난해 평균 4.37개월이었던 반면 전국 지방법원은 15.4개월로 3.5배 차이가 났다. 개인파산의 경우 서울회생법원은 2.62개월이 걸렸지만 다른 지방법원은 평균 5.7개월이 소요됐다. 지역에도 각급 법원마다 회생 파산 담당 재판부가 있지만 전문 법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특히 최근 글로벌 복합 위기로 한계기업과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도산 사건 신청이 폭증할 가능성이 큰 만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용선 의원실 관계자는 “(경기가 급랭하고 있어 자금 사정이 나빠진 기업과 개인의) 올 하반기부터 도산 신청이 폭증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채무자들에게 불합리한 측면이 있는 현 제도를 개선해 도산 사건을 형평성 있게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단 법안 통과까지는 파란불이 켜졌다. 여야가 모두 관련 법안을 낸 만큼 도산 사건 전문 법원 추가 설치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다. 특히 김도읍 의원은 해당 법 소관위원회인 법사위 위원장을 맡고 있어 원활한 의안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의원들이 내년 재보궐선거나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에게 보여주기용 선심성 정책을 제시하는 데 그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원·김도읍 의원은 지역구인 수원과 부산에 각각 회생법원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도산 사건 전문 법원을 추가 설립하는 데 필요한 법원 예산과 인력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회생법원에 대한 수요야 예전부터 많았지만 신설되기까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해서라도 시급히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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